[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나는 요즘 핸드폰을 안 가지고 간다. 새벽마다 핸드폰 반납 때문에 마음이 부담이 되어서다. 사람은 마음으로 살아가는데, 매일 새벽마다 하루를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은데, 일어나면 교회 입구의 철조망이 생각났다. 급기야 “핸드폰을 두고 오면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냥 지나가도 된다”라고 해서, 나는 그때부터 그렇게 한다.
사람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를 때가 많다. 2가지를 알아야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핸드폰 반납 정책은 매우 중요하다. 요즘 대학교도 강의 녹음을 금지한다. 강의를 녹음해서 외부로 유출할 경우에 대학교수는 말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져야하니, 금지하는 것이다. 옮다. 마땅한 정책이다. 연주회에 가면 반드시 핸드폰을 꺼야한다. 진동도 안된다. 진동소리가 연주에 영향을 미쳐서 그렇다. 법원도 핸드폰을 꺼야한다. 미술관은 작품사진 촬영이 금지된다.
법원, 공연장, 미술관, 강연회 등의 공통점은 사전에 촬영과 녹음 금지가 공지된다. 법원은 특히 오랫동안 녹음금지 정책을 언론에 알렸고, 소송이 열리는 장소 복도마다 큰 글씨로 공지된다. 이러한 정보는 사람 스스로 핸드폰을 끌 수 있도록 자유의지를 허락한다. 자신의 핸드폰을 자신이 꺼내서 끄는 것은 자율권에 의한 통제다.
예배가 시작됐는데, 예배시간에 핸드폰으로 녹음하는 사람이 없는지 감시하는 자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녹음금지 정책이 무슨 벼슬이나 되는양, 진리라도 되는양, 그것에 목숨을 거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핸드폰을 살피는 감시의 눈빛이 예배에 상당한 불편함을 주는데도 그 사람은 전혀 모른다. 말씀을 듣다가도 그냥 주눅이 들고 생각이 그쪽에 쏠린다. 그것은 도대체 누구의 책임인가? 진리가 중요한가? 진리의 녹음 금지가 중요한가? 녹음금지 정책 때문에 성도가 말씀을 듣는 시간까지 영향을 받는 것이 옳은가?
녹음을 하겠다고 작정하는 사람은 고성능 녹음기를 가지고 오면 쉽게 녹음을 한다. 그러한 사람의 녹음을 무엇으로 막을 것인가? 결국, 양심과 교육을 통해서 스스로 녹음을 하지 않도록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 그러한 실질적인 교육을 하지 않을까? 마치 로봇처럼 성도들을 날마다 통제하는 것은 결국 불편함의 벽에 봉착할 수 밖에 없다.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면 교회가 ‘가고싶은 고향의 향기’로 느껴지면 좋겠다. 교회만 떠올리면 딱딱한 초입의 철조망, 혹은 삭막한 전봇대로 느껴지니, 이 모든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그래서 나는 스스로 새벽에는 핸드폰을 안 갖고 간다.
오늘은 그 삭막한 철조망을 통과하는데, 얼른 지나가는데 누군가 내게 인사를 한다. “아~~ 수백번 지나가면서 처음 받아보는 인사”였다. 수백번 지나갔는데 처음 받아본 인사여서, 누가 도대체 까치처럼 인사를 하는가, 쳐다보니, 내가 아는 해병대 후배로서 성직자였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성직자가 아직 있구나라고 나는 스스로 마음을 먹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이것은 사도바울을 비롯해서 예수님이 신약성경 전체에 강조한 절대적 신앙의 공식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렇다면 교회 출입문은 어느 부분일까? 얼굴과 같다. 단상도 얼굴과 같다. 말씀이 흘러나오는 기능으로서 단상은 그리스도의 얼굴이요, 성도를 맞이하는 기능으로서 교회 출입구는 그리스도의 얼굴이다. 날마다 핸드폰 반납으로 성도들이 불편을 겪는다면, 마음이 얼어붙는다면 사랑의 마음이 점점점 식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불편하면 사랑은 식는다. 교회가 떠올리면 애정과 향기가 떠올라야하는데, 불편과 통제가 생각나면 그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백화점에 가서 그들의 지혜를 배워야한다.
그렇다고 핸드폰 반납을 허락하라는 것이 아니다. 뭔가 다른 방법을 강구하라는 것이다. 목적이 목적이다. 설교녹음 금지가 목적이지, 핸드폰 반납이 목적은 아니다. 그렇다면 설교녹음을 하지 못하도록 하면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설교녹음 금지는 양심에 따라 날마다 교육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핸드폰 반납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면, 장승처럼 경찰처럼 서있지 말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양해를 구하는 책임자가 안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고, 성도 스스로 핸드폰 반납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법원처럼, 공연장처럼, 미술관처럼 적극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지하고 공감하면 스스로 참여하게 된다. 통제보다는 자율로서 참여하게 해야한다. 스스로 핸드폰을 맡기는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요즘 자동차도 자율주행차로서 스스로 움직이는데, 그 어떤 사람이 통제를 좋아하겠는가? 할 수 만 있다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서 참여하게 해야한다. 그래서 나는 새벽에는 핸드폰을 가지고 가지 않는다.
** 개인적 견해로 핸드폰을 꺼서, 가방에 넣는 것,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핸드폰을 끄는 것은 공연장처럼, 예배가 시작하기 바로 전에 설교녹음 금지 정책을 부드럽게 설명하면서 동시에 핸드폰을 꺼내서 끈 다음에 가방에 넣으면 만사 OK다. 또한 나는 설교 녹음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