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자 미국인을 처단하기 위해 미국은 스파이를 긴급 파견한다. 유진(이병헌)이다. 미국 신분을 가진 유진은 저격할 암살범을 놓치지 않고 명중, 그곳은 아수라장이 된다. 유진과 애신의 운명적 만남, 표적은 하나 저격수는 둘 ‘동지인가?’
격변하는 조선을 지나면서 젊은 청년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생존을 모색한다. 모두 조국의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서, 조국의 국모가 살해당함으로 복수하기 위하여, 각자의 꿈을 지키기 위해서 펜을 드는 자, 칼을 드는 자, 총을 드는 자, 모두 각양각색이다. 상투를 자르고 세계의 무대에서 새로운 격변을 살아내야한다.
애신은 변화의 시대에 자신의 운명을 내걸고 싶지만, 할아버지가 엄격하게 금지하면서 논어와 맹자만 필사해야한다. 시대는 달라졌는데, 영어로 말하는 미국인이 이곳저곳에 보이는데, 언제까지 논어와 맹자로 시대를 살아갈 수는 없다. 애신과 할아버지는 전혀 생각이 다르다. 할아버지는 조선이 망했다고 생각하고, 애신은 조선이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할아버지가 두 손을 들었다. 그리고, 애신에게 총쏘는 법을 알려준다. 자신의 몸은 자신이 지키게 하려고.
들킨 둘, 모두 조국의 슬픔이 가득찬 자인데, 둘은 운명적이다. 이병헌은 종의 아들로서 미국인이 되어 돌아왔고, 애신은 조선의 귀족으로서 부모를 잃고서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다. 모두 조선인의 피가 흐른다.
과연, 지금의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면, 친일과 친미가 어떤 큰 의미가 있을까? 단지, 누가 보다 정의롭고, 혹은 누가 보다 진실하게 격변의 시대를 살아냈는가이다. 2천년전 그 격변의 시대, 십자가 사건에서 모두 살아남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도망쳤었다. 이후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서 기득권층과 정면으로 승부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겸허히 받아드리고, 어떻게 살아내느냐가 관건이다.
이병헌은 범인을 찾는 위치, 애신은 참고인 조사 대상, 이병헌이 애신에게 “무엇을 보았느냐”고 묻는다. 둘은 서로를 목격했는데, 손을 올려서 상대의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면서 “본 듯 하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가면을 쓰고서 살아가야할 그 시대, 정체를 숨겨야하는 운명같은 시대, 은유적으로 표현한 장면이다.
“같은 쪽으로 걸을까하여”
– 유진
복선(伏線)을 암시하는 대사다. 유진이 앞으로 걸어갈 긴 인생의 방향, 애신의 길을 따라서 조선의 운명속에 무엇을 할지, 묵직한 질문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