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신앙칼럼]=불교(佛敎)는 아니 불(弗)의 사람(人)인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이다. 기독교(基督敎)는 그리스도교로서 ‘그리스도’의 한자음역이 ‘기독’(基督)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가 기독교이다. 천주교와 기독교는 큰집과 작은집으로 같은 종교이다. 조계종과 원불교 등 모두 불교에 속하듯, 천주교와 기독교도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 속한다.
모든 종교(宗敎)는 하나님(神)을 만나기 위한 가르침이다. 귀신(鬼神)은 무당(鬼)이 굿을 할 때 찾아오는 영혼을 의미한다. 사람은 누구나 영과 혼과 육으로 되어 있고, 육이 죽으면 그 영혼이 저승으로 가게 되는데, 가지 않고 이 땅에 머무는 영혼도 있다. 그러한 영혼을 일컬어 ‘귀신’이라고 한다. 사람처럼 귀신도 존재가 있다. 단지, 그 급이 낮다. 모든 귀신이 전지전능의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영혼과 우주와 인간을 만든 신중의 신을 ‘창조주’라고 하며, 그 창조주는 곧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하늘님’을 의미한다.
창세기는 지금부터 6천년 전이다. 신석기 시대다. 그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직접 대화를 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최초로 하나님과 대화를 한 인물이 바로 아담이다. 아담은 유대교의 조상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천법’을 주었고, 동산의 모든 열매는 따먹고, 동산 중앙의 열매는 따먹지 말라고 금지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호기심과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따먹고, 쫓겨났다. 이후 아담 가정은 형이 동생을 죽이는 존속살해 사건이 일어난다. 혈기를 이기지 못한 가인이 착한 동생을 폭행으로 죽인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과 대화를 단절하였다. 즉, 절교(絶交)다.
사람들은 불교와 기독교가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전혀 알지 못한다. 불교와 기독교를 적대관계로 해석하거나, 경쟁관계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근본으로 따지면 그것이 아니다. 알파벳도 배워야 안다. 요즘 인기있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tvN 이병헌 주연)에서도 여주인공 애신이 영어를 모르니까, ‘LOVE’가 뭐냐고 묻는다. 모르면 모르는 것이다. 알면, 영어로 유창하게 대화를 한다.
기독교는 서양종교, 불교는 동양종교로 보통 구분하는데, 하나님께 서양과 동양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사람끼리 구분하는 것이고, 하나님께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 예수님도 유럽의 입장에서 보면, ‘동양의 오리엔트’에 속했다. 우리는 예수님을 서양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서양인은 예수님을 동양인으로 본다. 동양과 서양은 결국 상대적 개념일 뿐이다.
종교(宗敎)에서 종(宗)은 示와 뚜껑(宀)이 합쳐진 글자로서, 제사상을 덮고 있는 뚜껑이며, 제사상이 놓인 사당(社堂)을 의미한다. 요즘의 단어로 표현하면, 교회이며, 절이다. (사찰을 ‘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절을 많이 해서다.) 示는 보일 시(示)다. 밥상(小)위에 제물이 올려진 모습이다. 사람이 제물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사람이 친하면 아무 때나 만난다. 친하지 않으면 친한 사람을 통해서 인맥을 형성한다. 친하지 않은 사람을 만날 때는 반드시 선물을 가지고 간다. 예의요, 상식이요, 관계를 형성하는 지혜다.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선물’로서 동물을 잡아서 제사를 지낸 것이다.
본래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그냥 만났다. 법을 지키면서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면서 살았으나, 천법을 범하면서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고, 그때부터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만물을 통해서 나아갔다. 하나님과 사람이 가장 친밀했으나, 사람이 타락함으로 만물보다 못한 위치로 멀어졌다. 그래서 사람이 보다 하나님과 가까운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간 것이다. 그것이 구약의 제사요, 불교와 유교의 제사다.
불교와 유교는 그 시작점이 다르지만, 유교는 보다 학문적이고, 불교는 수도생활을 강조하는 종교문화다. 둘 다 제사를 지내며, 구약의 제도를 따른다. 구약은 제사를 지내는 종교로서, 예수님이 오기 전 유대교는 제사풍습을 가지고 있고, 지금도 유대인은 제사문화를 가지고 있다.
“구약은 법을 주고, 신약은 구원하고, 성약은 뜻을 준다”
– 정명석 목사님 말씀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에 있어서, 유대교와 불교와 유교는 모두 비슷하다. 사람이 직접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오직 제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만약 사람이 직접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면, “부정탔다”면서 엄청난 저주를 받게 된다. 무섭고, 두렵고, 공포심이 가득한 것이 제사문화다. 그래서 기일(忌日)은 꺼릴 기(忌)를 쓴다. 제삿날인 기일이 되면, 마음을 움츠리고서 그 무엇을 해서도 안된다.
제사장(祭司長)은 제사를 지내는 장관으로, 유대교의 제사를 맡은 대장이다. 불교로 말하면 주지스님과 같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의 입법사법 기관은 산헤드린 의회였다. 일반 백성은 죄를 지으면 동물을 잡아서 성전에 가져갔는데, 제사장들의 주 수입원이 제물이었다. 불교와 거의 흡사하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제사없이 죄를 그냥 용서했다. 유대교 제사장 입장에서는 수입원이 끊기는 상황을 직면한 것이다. 구약은 제물로 하나님께 나갔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친밀감을 형성해서 제물없이 평소에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예수님을 믿는 특권이 바로 이것이다.
예수님은 동물의 제물을 폐하고, 사람의 마음을 제물로 삼아서 신령한 예배를 드리도록 하신 것이다. 소와 돼지와 양을 아무리 잡아서 하나님께 드린다고 해서, 사람이 정결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정결해지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면서 진실로 회개하고, 죄를 범하지 않는 신앙생활을 해야한다. 정결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몸을 제물로 받아드리는 시대가 바로 ‘신약시대’이다.
제물을 더 이상 드리지 않아도 된다면, 그것은 구약을 넘어선 것이다. 구약은 제물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고, 신약은 제물없이 본인이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다. 대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본인이 제물이며, 목사가 제사장이고, 평소 기도할 때는 본인이 제물이며 제사장이 되어서 하나님께 나아간다. 제도가 보다 간단해진 것이다.
하나님을 만남에 있어서, 제도가 무척 까다롭다면, 그 종교는 구약식이다. 핸드폰도 신형일수록 사용법이 심플하다. 구형일수록 사용법이 까다롭다. 법도 마찬가지다. 법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면, 그 법은 선진국형이고, 사람이 법을 위해 존재하면 그 법은 후진국형이다. 제도가 복잡하면 그것은 불편하고, 제도가 사람의 옷처럼 편안하면 선진국형이다. 모든 이치가 그러하다.
하나님을 간절히 불렀는데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천법을 어겼을 때 그러하다. 죄가 있으면 하나님은 멀어진다. 구약은 법을 주고, 신약은 구원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법을 반드시 배워야한다. 법을 모르면 죄를 즐기면서도 모른다. 모르면 독버섯을 영지버섯인줄 알고 먹다가 죽는다. 범죄하는 영혼은 죽는다고 에스겔 선지자는 경고했다. 천법을 배워서, 죄를 짓지 않고, 지은 죄는 회개해서 용서를 받으면, 하나님을 간절히 부를 때, 하나님이 마음으로 느껴진다. 하나님은 슈퍼맨으로 전지전능하므로, 간절히 기도하는 자의 요청을 반드시 들어주신다. 하나님을 1:1로 사귀는 사랑의 시대가 바로 성약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