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뜻깊은 일을 했다. 내 기사의 독자분들이 내게 조언을 했다. 어떤 분은 내 기사의 오타를 상세하게 보내왔다. 얼마나 감사하던지, ‘대패로 깍다’에서 ‘깎다’가 표준어인 것을 그 독자분을 통해서 배웠다. 그 독자분 덕분에 ‘대패와 관련한 신앙칼럼’에서 ‘깍다’를 모두 ‘깎다’로 수정할 수 있었다.
또 어떤 독자분은 내 프로필 사진을 바꾸도록 권유해줬다. 5년, 혹은 7년 넘게 사용한 프로필 사진인데, 넥타이를 하지 않은 모습이다. 내게 더 좋은 사진으로 바꾸는 것이 어떻겠냐고 마음 문을 노크해서, 그 의견을 받아드렸다. 조언은 곧 돕는 말이다.
‘너도 인간이니’ 드라마는 알파고의 현실화를 집중 조명한 내용이다. 인간 로봇을 만들면, 과연 이 세상은 기계문명으로 변질될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공장과 연구소는 이미 로봇이 대신하였으나, 사람들의 직업은 줄어들지 않고 새롭게 파생되어서 인류문명은 발전하고 있다. 컴퓨터는 이미 로봇의 지능으로 우리와 함께 한다. 스마트폰은 작은 인공지능 로봇이다.
인간 남신이 로봇 남신을 만나서, “너는 내 명령대로 해!!”라고 하니, 로봇 남신이 인간 남신에게 “나는 당신을 돕기 위해 존재하지만, 당신이 내게 명령을 내릴 수는 없어요. 당신은 부탁할 자격이 있을 뿐이죠. 필요한 일이 있으면 정중히 요청하세요. 그 부탁을 들어줄지, 아닐지, 제가 판단해요”
로봇 남신은 슈퍼맨의 능력을 가지고 있고, 인간 남신은 자신을 돕는 로봇마저 비뚤어지게 생각한다. 로봇이 돕기 위해 있지만, 그것도 의심의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다. 둘의 극명한 대립은 사람의 본질을 묻는 것이다. 과연 로봇은 기계적이고, 감정이 없고, 사람은 감정이 풍부하고 사랑이 넘치는가?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속에 사랑없는 인간군상이 얼마나 많은가? 내 자신의 마음물결을 들여다봐도, 청소할 생각의 오물들이 많다.
우리는 2가지 판단을 항상 해야한다. 로봇 남신처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상황을 해결하는 것, 둘째는 감정으로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다. 갈등조정 이론에서는 ‘YES와 NO’라고 지칭한다. 하나님의 진리앞에서는 YES만 존재한다. 반면,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YES와 NO’는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거절당함에 익숙해지는 연습도 해야한다.
나는 30년 전 친구의 조언을 받아드려, 성경의 진리를 배웠고, 시대 주를 만났다.
나는 20년 전 교회 전도사님의 조언을 받아드려, 담배와 술을 끊고 새로운 신앙인이 되었다.
나는 10년전 정명석 목사님의 조언을 받아드려, 한문과 언론에 꾸준히 매진하여 지금의 작가가 되었다.
나는 1년전 달팽이 사건을 통한 성령의 조언을 받아드려, 섭리사에 머물게 되었다.
나는 몇 달 전 화장실에서 교회 장로님의 조언을 받아드려, 월명동에서 그를 만났다.
나는 몇 달 전 신앙의 글을 써보라는 조언을 받아드려, 올해만 오늘까지 수백편의 신앙칼럼을 썼다.
성경인물로 베드로도 예수님의 조언을 받고,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서 물고기를 잡았고, 예수님의 조언을 받고 신앙의 사람이 되었고, 십자가 사건 이후에도 예수님의 조언을 받고 성경을 깊게 탐독하며 복음의 길을 걸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의 따끔한 충고를 깊게 받아드려, 돌이킴의 사람이 되었다.
오늘 조언을 통해 프로필 사진을 바꾼 것은 정말 잘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