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신앙칼럼]=그리스도의 한자음역은 기독(基督)이다. 기독교는 곧 그리스도교이다. 유대교는 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의 후손인 다윗왕조의 종교를 말한다. 이스라엘은 야곱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의미하며,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부음을 통해서 왕으로 삼았고, 이후 사무엘은 소년 다윗에게 기름부음을 통해서 왕이 될 것을 예언했다. 사울에 죽고,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왕으로 삼았다. 기름을 붓는 것은 하나님께서 왕으로 삼는 거룩한 예식이다.
한자음역으로 기독(基督)은 기초 기(基)와 살필 독(督)이다. 기(基)는 기초이며, 땅을 말한다. 기독(基督)은 ‘땅을 살피는 사명자’ ‘땅에 보냄을 받은 사명자’를 뜻한다. 감독(監督) 총독(總督) 등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람은 누구나 상대가 약속을 지키는지 살핀다. 사람의 기본 심리다. 학교 교사는 숙제를 내주고 다음날 검사를 한다. 엄마는 자녀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했는지 확인한다. 숙제를 안해오면, 벌을 받는다. 심부름을 안했으면 엄마가 인상을 쓴다. 기본 상식이다.
그리스도는 반드시 무섭게 살피는 ‘사명의 눈’을 가지고 있다. 곧 독수리 눈빛이다. 성경적으로 탐색해 보아도 정확하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진리의 법’(따먹지 말 것)을 주고, 무섭게 살폈다. 무섭게 살폈다는 증거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경고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정녕코 죽으리라’는 경고장은 ‘절대금지’의 명령어다.
반면, 뱀은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자유를 허락한다. 정녕코 금지한 것은 해서는 안된다. 정녕코 해야할 일은 반드시 해야한다. 뱀은 꼭 반대로 말한다. 그래서 뱀같은 유혹은 듣지 말아야한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후, 하나님이 동산을 거니시는 장면이 나온다. 살폈던 것이다.
창세기 3:8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살피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이다.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그리스도는 살피는 성품이 있다.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과 관용의 그리스도’로 인식한다. 정말로 그럴까?
“독사의 새끼들아, 뱀같은 놈들아”
위 단어를 예수님이 사용했다면 믿겠는가? 실제로 사용했다.
(마태복음 23:3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중략)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계시록에 묘사된 예수님은 ‘눈에서’ 레이져까지 발사된다.
(계시록 2:18)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중략)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줄 알찌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장면도 자세히 분석하면, ‘살피는 성품’이 그대로 드러난다.
(마태복음 26: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쌔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다시 두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다시 오사 보신즉 저희가 자니 이는 저희 눈이 피곤함일러라 또 저희를 두시고 나아가 세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베드로와 요한을 데리고 가서 함께 기도하자고 한 후, 기도하다가 제자들을 2번이나 살피는 장면이다.
예수님은 살아있는 동안에 갑자기 제자들을 집결시켰다. 그리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질문을 통해 살핀 것이다.
(마태복음 16:13)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중략)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와 비슷한 사건이 얼마전 예배때 있었다. 정명석 목사님이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그때 두 사람이 단상 옆에 서서 각자 본 것을 말했다. 질문을 통해 두 사람을 살핀 것이고, 두 사람을 통해서 전체를 살핀 것이다. 대답의 명확성은 나는 잘 모르겠다. 두 사람처럼 나는 따라다니지 못하였으니, 어찌 알겠는가.
얼마전, 정말로 우연히 전문강사를 알게 됐다. 그 분이 전문강사인줄 전혀 몰랐다. 새벽말씀의 멘토링에서 “사연을 들어보라”는 말씀에 따라, 나는 항상 사람의 사연을 자세히 들어본다. 전화로 사연을 상세히 물어보았는데, 전문강사였다. 그 분의 많은 사연중에서 젊은 날 약속이 마음에 깊게 와 닿았다.
“대학생 시절에 선교사를 하겠다고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결혼하고서 진리를 배우게 됐어요. 몇해전 기도하는데, 젊은날 하나님과 했던 약속이 생각났어요. 선교사를 하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깊게 깨닫고, 이후로 생명전도와 성경강의에 매진하는 삶을 살고 있어요. 늦었지만, 하나님과 약속을 지키기로 결심했어요” (어떤 전문강사의 사연)
무섭게 자신을 살피는 그 강사분의 사연을 들으면서, 진정성이 내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