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한 것만 부활한 것이다. 죄를 지은 것은 죽은 것이다.”
– 정명석 목사님 새벽말씀 요약노트
부활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그는 “부활은 정말 어렵고, 중요하다. 병들기는 쉬워도 병을 고치는 것이 어렵듯, 다시 살아나는 부활이 힘들다”고 계속 강조했다. 새벽예배의 부활을 이뤘으나, 새벽의 열정적 불이 붙기까지는 아직 나는 미약하다. 고등학교 때 나는 새벽기도의 불이 붙어서, 날마다 교회에 참석해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학교에 갔다. 그 시절에 비하면 나는 보다 윤택해졌고, 생활여건이 편안해졌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심정의 불이 용광로처럼 뜨겁지 못하고, 간절함은 둔감해졌다. 반드시 살아나야한다.
죄(罪)는 새(非)가 그물(罒)에 갇힌 모습이다. 해서는 안되는 일(非)을 행함으로 갇힌 상태다. 할 일을 하면 마음이 편한데, 할 일을 못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마음이 불편한 그것이 ‘갇힌 상태’이다. 죄송(罪悚)하다는 것은 죄를 지어서 송구(悚懼)하다는 것이고, ‘송구’는 두렵고 떨리다는 뜻이다. 죄는 ‘마음과 행동이 갇힌 상태’이며, 해서는 안되는 일을 행할 때 그렇게 된다.
의(義)는 양(羊)과 나(我)의 합성으로, 희생양을 삼은 양을 본떴다. 희생양은 자신의 죄를 대신하는 것이다. 의로움은 죄를 회개함으로 가능하다. 사람이 살면서 먼지가 묻을 수 밖에 없다. 흙먼지는 날릴 수 밖에 없다. 먼지가 날리는 상황에 물을 뿌리면 먼지는 더 이상 날리지 않는다. 물을 뿌림으로 흙먼지 문제를 해결하듯, 죄는 회개의 물로 씻는 것이다.
독을 먹으면 사람은 죽는다. 약을 먹으면 사람은 살아난다. ‘먹는 것’이 사람의 생명을 좌우한다. 그와 같이 무엇을 듣느냐가 뇌를 자극하고, 무엇을 보느냐가 생각의 방향을 결정한다. 또한,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마음의 길을 좌우한다. 운전대를 잡은 운전수가 정신을 차리고 운전하듯이, 생각의 운전대에서 절대 졸지 말아야한다. 순간 졸면, 자신도 모르는 곳으로 생각이 흘러간다.
죄는 달콤하지만, 끝이 독약이다. 죄는 영혼에게 독약이다. 사람이 쥐약을 먹고서 살아날 자는 없다. 쥐약 먹으면 쥐도 죽고, 사람도 죽는다. 그처럼 죄는 영혼에게 쥐약과 같아서 죽고 만다. 쥐약을 조금 먹는다고 보약이 되는 것이 아니다. 작은 죄도, 큰 죄도 사람의 영혼에게 치명적이다. 치사량(致死量)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양(量)인데, 음란함과 미움과 혈기는 작은 양도 치사량이 되어서 자신의 영혼을 패망에 이르게 한다.
죄의 기준은 ‘하나님의 관점’이고, 의의 기준도 ‘하나님의 관점’이다. 육체의 행위를 규제하는 법은 ‘율법’으로 ‘법률’을 말한다. 율법은 곧 제도다. 법률을 범하면, 육신이 제재를 받는다. 자유를 박탈당하거나, 벌금을 물게 된다.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기도 한다.
죄는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행한 것’이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한 것에 대해서 성경공부를 반드시 해야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영혼이 사망의 감옥에 갇히지 않는다. 죄를 모르면, 죄를 즐기면서 사망에 갇힌다. 전혀 모른다. 죽은 사람은 다시 살리기 힘들 듯, 영혼도 다시 살리기가 정녕코 힘들다.
쉽게 말해서, 의(義)는 하나님이 좋은 대로 하는 것이고, 죄(罪)는 자기 좋은 대로 하는 것이다. 먹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독을 먹으면 죽듯이, 사랑은 필요한 일이지만, 하나님이 싫은 것을 사랑하면 그것이 치명적 죄가 되어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다. 정치는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해서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고, 신앙은 하나님의 뜻을 파악해서 행동을 집행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