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에서 계속)
생활전선에서 우리는 여리고성, 아이성, 아모리 연합군의 문제를 직면한다. 그때마다 여리고성 함락작전, 아이성 기습작전, 아모리 연합군 격파작전을 기억해야한다. 각각 전술이 달랐다.
3) 아모리 연합군과 대전쟁
이스라엘 군대는 아이성 전투에서 압승했다. 여리고성과 아이성의 전투로 가나안에 이스라엘 군대의 명성이 널리 퍼졌다. 그동안과 전혀 다르게 기브온 족속이 항복의 깃발을 들고 왔다. 여리고-아이-기브온의 순서로 점령을 당하는 상황인데, 기브온이 겁을 먹고서 먼저 항복을 한 것이다. 기브온은 변장술을 활용해서 이스라엘 군대를 속여서 화친조약을 맺었다. 여호수아서를 기록한 사관은 이 사건을 놓고서 부당한 계약이라고 적었지만, 기록의 시기가 전쟁 당시는 아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 적은 관점이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대가 아이성에서 겨우 승리를 한 그 시점에 기브온의 항복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마치 기생 라합이 항복하듯, 가나안 땅에서 큰 성읍이 싸우지 않고 항복을 했으니 이스라엘 군대로서는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것이다. 화친조약은 군사동맹이고, MOU를 맺는 것이고, 연합하고, 협력하고, 어려울 때 돕는 것이다. 기브온이 이스라엘과 화친조약을 맺었으니, 그것은 가나안 부족(아모리 부족 연합군)을 배신한 것이다.
기브온처럼 우리는 때로 ‘기브엎’(give up) 철학을 가져야한다. 하나님과 전쟁을 할 때는 포기하고, 항복해야한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와 전쟁을 하다가 낭패를 당한 인물이 바로 람세스 2세다. 10대 재앙이 민족을 휩쓸었고, 국가는 망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여리고성도 하나님의 군대와 대적하니, 성벽이 무너졌다. 아이성도 하나님의 군대와 대적하니 멸절됐다. 요시야왕조차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이집트 군대와 대적하니, 어이없게 전사했다. 이후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생활을 해야했다. 이처럼 하나님과 대적하는 것은 엄청난 손실을 가져온다.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항상 파악하고 살아야한다. 기브온은 그것을 잘 했다. 기생 라합이 여리고성의 주민으로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듯, 기브온도 가나안에 거주했지만 하나님의 편에 서기로 결심하고 성읍 전체를 하나님께 맡긴 것이다.
기브온이 가나안 족속을 배신하니, 가나안 연합군(아모리 연합군)이 똘똘 뭉쳐서 기브온을 공격했다. 기브온 입장에서 선택과 결정을 했고, 그 책임은 감당해야한다. 하나님과 연합한 기브온을 위해서 이스라엘 군대는 구원병을 파병했다. 그 사건이 바로 ‘태양아 멈춰라’이다. 우리가 세상문화를 뒤로 하고 신본주의로 살아갈 때, 반대의 마찰력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관망만 하지 않는다. 사람도 자신을 믿어주면 기꺼이 돕는데, 하물며 하나님이시랴. 기브온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가장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하늘에서 우박을 퍼부어서 아모리 연합군을 멸절했으니, 그런 사건은 과연 전쟁사에 기록으로 남을만했다.
(여호수아서 10:5)
아모리 다섯 왕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이 함께 모여 자기들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올라와서 기브온에 대진하고 싸우니라 기브온 사람들이 길갈 진에 보내어 여호수아에게 전언하되 당신의 종들 돕기를 더디게 마시고 속히 우리에게 올라와서 우리를 구조하소서 산지에 거하는 아모리 사람의 왕들이 다 모여 우리를 치나이다 하매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용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올라가니라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두려워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그들의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하신지라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밤새도록 올라가서 그들에게 갑자기 이르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시므로 여호수아가 그들을 기브온에서 크게 도륙하고 벧호론에 올라가는 비탈에서 추격하여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이르니라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덩이 우박을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우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욱 많았더라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찌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기를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하지 아니하였느냐
아모리 족속 다섯 왕은 예루살렘 왕, 헤브론 왕, 야르뭇 왕, 라기스 왕, 에글론 왕이다. 앞글자만 따면 ‘예라에헤야’이다. 적들이 연합하는데, 하나님의 사람들이 연합하지 않으면 결코 이길 수가 없다. 먼저는 하나님과 연합하고, 둘째는 하나님의 군대로서 연합하고, 셋째는 협력할 자들과 협력해야한다. 여호수아의 경우, 간절히 하나님께 간구하여 답을 받고서 어려움에 빠진 기브온을 돕기 위해 구원병을 파병하기로 결정하였다. 만약, 이스라엘 군대가 기브온의 도움을 외면했다면, 아모리 족속에 의해 기브온은 점령당하고, 이스라엘 군대가 오히려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기브온이 설령 이스라엘 민족과 다르다고 해서 ‘멸절될 적군’으로 규정했다면, 이스라엘은 아모리 연합군을 쉽게 격파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혼자 하면 10, 둘이 하면 100, 셋이 하면 1000을 한다. 협력은 ‘0’을 붙게 한다.
(여호수아서 10:12~13)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찌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기를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 기록을 놓고 여전히 말들이 많다. 태양이 멈췄느냐, 지구가 멈췄느냐, 그런 논란이다. 정명석 목사님은 “태양도 지구도 멈추지 않았다. 시간이 멈췄다. 여호수아 군대가 시간적 승리로 전쟁에서 이겼다. 우박을 통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진실로 명쾌하고 통쾌한 해석이다.
여호수아서 10:12~13은 10~11에 대한 사건과 연결된다. 여호수아서는 연대기로 기록된 것 같아도 중간중간 사건의 내용중심 서술도 포함된다. 해당 사건이 그렇다. 여호수아가 기도한 것과 아모리 족속의 전쟁이 시간의 서술은 아니다. 전쟁이 일어나기전부터 여호수아는 분명 기도했을 것이다. 전쟁이 한창 진행될 때도 여호수아는 기도했을 것이다.
그 전쟁은 ‘여호수아가 그들을 기브온에서 크게 도륙하고 벧호론에 올라가는 비탈에서 추격하여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이르니라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를 의미한다. 여호수아서 10장 10~11의 전쟁과 10장 12~13의 전쟁이 같은 것이다. 길갈에서 곧장 구원병을 이끌고 전면전을 펼친 이스라엘 군대는 아모리 연합군을 격파했다. 이때 분명 기브온 군대도 함께 협력했을 것이다.
아모리 연합군과 전쟁은 기브온에서 먼저 있었고, 이때 아모리 연합군은 대패하면서 벧호론의 비탈로 도망쳤다고 기록되었다. 벧호론의 비탈로 도망치는 아모리 족속을 놓고서 여호수아는 간절히 기도했을 것이다. 다 잡았는데, 도마뱀처럼 도망치니 얼마나 안타깝겠는가? 그런데, 추격해보니 이미 적군이 죽어있었던 것이다. 벧호론을 지날 때 우박이 쏟아져서 멸절한 것이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표적이다. 사실상 우박이 내렸다면, 하늘에 태양이 보일 리가 만무하다. 우중충한 날씨에 죽음을 각오한 배수진으로 운명을 결정하는 전쟁이었는데, 얼마나 간절했으면 태양까지 붙잡았겠는가!!! 그러므로, 태양과 같으신 하나님께서 자연만물의 표적을 통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끄셨던 것이다. 하나님도 간절히 부탁해야 돕는 하나님이시다.
여호수아서는 여호수아 시대에 기록된 것이 아니다. 마치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처럼 훗날 기록된 것이다. 고려사는 고려 이후에 고려를 기록한 것이다. 그와 같이 여호수아서도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에 기록된 것이다. 그러한 관점은 여호수아서 전반에 “오늘까지”라는 시간의 흔적으로 표현된다. 여호수아서를 기록한 사관은 전쟁을 겪지 않았으니 여호수아의 기도를 직접 목격했을리 만무하다. 사관이 인용한 책은 바로 ‘야살의 책’이다. 사관은 야살의 책을 통해서 여호수아 시대 전쟁사를 재구성했던 것이다.
역사(歷史)는 기록이다. 여호수아서 10장 13절의 기록은 3가지 관점이 존재한다. 첫째 여호수아의 전쟁 사건, 둘째 여호수아의 전쟁을 기록한 야살의 관점, 셋째 야살의 책을 통해 여호수아 전쟁을 기록한 관점이다. 3가지는 모두 시간상으로 전혀 다르다. 여호수아의 기도와 전쟁이 제일 먼저 있었고, 야살의 책에 그 사건이 기록되었고, 그 다음에 여호수아서가 기록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3가지 관점이 결합된 여호수아서를 3400년이 지난 지금 읽는 것이다. 4가지 관점을 인지하고 해당 기록을 살펴본다면 ‘태양아 멈춰라’의 기록의 본질이 무엇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여호수아서의 저자가, 야살의 책 저자가 과연 ‘태양의 멈춤’을 기록하고자 했는가? 우박의 표적으로 승리한 이스라엘의 전쟁을 기록하고자 했는가? 태양이 멈춘 것을 알리고자 했다면, ‘우박사건’과 ‘태양의 멈춤’의 인과관계에 초점을 맞췄을 것인데, 그러한 기록은 전혀 없다. 이러한 기록의 정황만 보더라도 야살의 책과 여호수아서는 이스라엘 군대와 함께 한 하나님의 역사를 기록한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정명석 목사님은 ‘우박의 표적’을 놓고 오랫동안 기도를 하셨다. 어떻게 우박을 맞고 사람이 죽을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었다. 이탈리아에서 해외 선교 및 집필활동을 하실 때, ‘우박의 표적’을 놓고 간절히 기도했을 때, 뉴스에 엄청난 우박이 떨어진 것을 보게 된 것이다. 그때 정명석 목사님은 우박의 표적에 대한 인식관을 달리하고, 하나님께서 과연 우박을 통해서 이스라엘 군대에 승리를 주셨음을 확증하셨다고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