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주관과 고정관념의 고질병
의사는 사람을 치료한다. 몸속에 의사가 있다. ‘피’(血)다. 피는 온몸을 순환하면서 몸의 모든 병을 치료한다. 우리는 ‘병’(病)이라고 부르고, 피는 ‘정상에서 벗어난 상태’로 인식한다. 정상에서 벗어나면, 혈액은 즉시 반응하면서 몸을 정상상태로 만든다. 이것이 ‘몸이 몸을 치료하는’ 자연치료법이다. 면역체계 시스템도 여기에 해당된다.
축구를 차다가 ‘근육통’이 왔다. 근육통은 경련이며 ‘쥐’다. 엄청나게 아프다. ‘이렇게 약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몸이 그 근육을 보호하려고 자동장치가 가동된 것이다. 이러한 자동장치는 집안에서도 종종 발견한다. 가령, ‘앵앵앵앵’으로 경보음이 울리는 것, 자동장치다. ‘두꺼비집’이 내려가는 것도 자동장치다. 과부하가 걸리면 두꺼비집은 자동장치로 내려간다. 이처럼 근육경련은 근육을 보호하려고 몸이 스스로 차단하는 것이다.
발을 자세히 보면 발등에 정맥이 보인다. 그 정맥은 발목위로 올라간다. 이 작은 호스가 발목의 모든 혈액수송에 관여하고, 나아가 몸 전체의 혈액공급까지 영향을 미친다. 걷기 운동은 몸의 혈압에 직접 영향을 주고, 뛰는 운동은 심장 박동수를 높이면서 몸 전체의 혈관이 활동력을 얻는다.
사람들은 심장만 피를 돌린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심장과 함께 보조 펌프가 있다. 그것이 두 발이다. 손은 아니다. 손은 펌프작용을 하지 않는다. 발은 펌프작용을 한다. 몸무게가 발에 미치는 압력은 엄청나며, 그 압력은 발가락 끝에서 직접 관여하면서 걸을 때마다 펌핑을 해서 혈관속 혈류에 힘을 더한다. 심장이 힘차야 혈류가 강하고, 발걸음이 힘차야 위로 치솟는 혈류가 강해진다.
사람의 걸음은 구두와 하이힐 때문에 망가졌다. 신발은 발의 감옥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발의 신발을 벗어라”고 했던 것이 과연 인본의 자기주관을 벗는 것도 있고, ‘발의 건강’을 위해 신발을 벗는 것도 있다. 신발을 벗으면 발은 자유를 얻는다. 왜 인류는 발을 혹사시키며 살까?
한국인은 ‘빨리빨리’의 민족이다. 그래서 각종 운동경기에 소질이 좋다. 발이 빠른 경기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태권도의 운동은 한국의 고유 무술이다. 발의 빠름은 맨발에서 나온다. 외국은 집안에 신발을 신고 들어가지만, 한국고유문화는 온돌을 사용하면서 맨발로 다닌다.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짚신을 신어서 발가락 기능이 살아있었다.
손가락에 꽉끼는 손장갑을 끼고서 하루종일 살아보라. 신발처럼 손가락을 꽉 조이면, 손가락의 기능이 거의 마비된다. 고무장갑을 끼고서 설거지만 하더라도 끝난 후에 손이 얼얼하다. 어쩔 수가 없다. 손도 그러한데, 발은 오죽하겠는가? 본래 발가락은 손가락처럼 쫙 펴져야한다. 그런데 구두 때문에 발가락은 안으로 오그라졌고, 여성들의 발가락은 기형으로 변형된 경우가 많다. 모두 신발 때문에 발생한 현대문화병이다. 발가락이 망가지면서 발이 약해지고, 약해진 발은 결국 펌핑작용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심장을 위해 보조 펌프로 작동해야할 두 발이 기능을 제대로 못하니, 혈액량도 줄어들고, 혈류 속도도 느려지면서 만성피로가 점점점 증가한다.
신발과 함께 양말도 혈액차단에 큰 역할을 한다. 목이 좁은 양말을 신게 되면, 발목에서 정맥이 차단된다. 즉각적이다. 손목에 시계를 꽉 채우면 손목의 혈관도 차단된다. 반지를 낀다면 손가락의 혈관도 차단된다. 혈관이 좁아지면 혈액공급이 원활하지 않는다. 이것은 몸의 건강과 직결된다. 1~2시간 그렇게 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거의 날마다 같은 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해당 지체에 치명적 손실이 발생할 위험이 높다. 사소한 습관이 혈관을 차단하면서 혈액공급 부족으로 신경에 마비가 오고, 점점점 둔화되는 건강악화에 이른 것이다. 몸의 진리는 간단하다. 피와 신경이다. 몸은 피와 신경으로 건강을 유지한다. 피공급이 끊기면, 신경은 활동하지 않는다.
피는 온 몸을 돌면서 세포가 살 수 있도록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한다. 그런데 혈관이 차단되면 혈액공급량이 줄어들면서 모세혈관의 혈류는 점점점 작아진다. 어떤 모세혈관은 개울처럼 말라버릴 수도 있다. 죽은 세포는 이러한 현상의 결과다. 영혼은 말씀으로 소생하고, 살아간다. 말씀은 곧 피와 같다. 말씀이 인생가운데 흘러오는데, 스스로 말씀을 차단하면 말씀은 비켜서 지나간다. 말씀을 듣지만, 자기주관과 고정관념이 있으면 말씀은 내면으로 흘러올 수 없다. 마치 꽉 조인 신발과 양말이 혈관을 차단하듯이 그렇다. 자기생각과 고정관념은 날마다 ‘벗는 훈련’을 해야한다. 자기도 모르게 스믈스믈 칡넝쿨처럼 솟아오르는 자기주관은 말씀이 흘러오지 못하게 하므로, 모세가 신발을 벗듯이 그렇게 벗어야한다. ‘맨발의 청춘’은 곧 ‘순수의 청춘’이며, 말씀앞에 진실함으로 나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