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명동 약수가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굴속의 약수 외에 잔디밭에 오래전에 준비된 물탱크가 있었고, 어제 사역자를 통해서 보고되어 약수샘에 연결해서 약수물이 나오게 된 것이다. 어제도 충격, 오늘도 충격이다. 바다가 살아있는 것은 밀물과 썰물의 교차, 파도의 출렁거림에 있다. 노래에 어깨가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은 곡조의 높낮이에 있다. 말씀에 따라 이리저리 휘어지듯이 변곡점이 생기면서 반전(反轉)이 드라마틱한 섭리역사이다.
오늘은 ‘강’(强)의 심판이고, ‘유’(柔)의 축복이다. 강하면, 생명을 다치게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생명을 관리하기 위해서 심판을 하실 수밖에 없다. 축구경기에서도 심판이 있어야 경기가 진행된다. 강하게 발로 걷어차면, 그 선수가 아무리 연봉이 높아도 심판은 경고장을 준다. 어쩔 수가 없다. 부드러움은 생명을 품는다.
월명동에 천사장 조각상이 들어왔다. 귀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옮길 때, 붙잡는 줄이 조각상을 다친다. 조각상이 다치지 않게 묶어놓은 줄이 조각상을 다치게 할 수 있다. 줄의 힘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조각상을 위해서 묶은 줄이 조각상에 피해를 주는 것이다. 조각상의 손가락은 너무 예리해서, 작은 힘에도 부러질 수 있어서 그렇다. 그와 같이 생명도 과잉관리로 마음이 다칠 수 있음을 정명석 목사님이 말씀했다.
‘성전 문지기’와 관련해 깊은 말씀을 전하셨다. 탁월한 비유와 은유로서 정명석 목사님은 성도들에게 ‘인격과 매너’를 갖추도록 권면하셨다.
주차관리를 너무 몰입해서 하다가, 성도들에게 상처를 줄 정도로 마음을 다치게 하고, 무서움을 주는 경우가 발생했고, 그러한 주차관리는 강한 것이라고 하셨다. 차보다 사람이 중요하다. 차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면, 그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다. 월명동 초소도 마찬가지다. 월명동 문지기도 마찬가지다. 문은 통제와 출입의 양면성이 있다. 지나치게 통제하다가 천사까지 막는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을 너무 지나치게 통제하다가 천사까지 막을 수 있다. 조심해야한다.
오늘 새벽말씀은 부드러운 샤브샤브처럼 맛있고, 감칠났고, 나의 강한 자기주관과 교만이 부드러워지게 은은한 감동을 주셨다. 아멘!!! 더욱 부드러워지는 언어와 행실과 인격을 겸비하리라. 더불어, 마사지 비법을 배우고, 마음을 위로하는 표현의 마사지 비법도 연마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