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역자에게 꼭 필요한 2가지
‘고난과 영광’의 말씀으로 오늘 새벽도 충만했다. 정명석 목사님이 직접 행하신 어제의 삶, 10년의 삶, 평생의 삶, 하나님의 행하심이 결합해서 깊은 진리의 말씀이 강물처럼 흘러 넘쳤다. 그를 통해 오늘 본 고래의 분수는 ‘생활속에서 문제를 풀어야 생활속에서 영광이 온다’는 말씀이었다. 더불어, “기다리는 기독교인처럼 인식관이 잘못되면, 행하면서도 기다린다”고 성도들의 모순을 지적했다. 기독교인은 땅에서 메시야가 왔는데, 여전히 구름타고 온다고 기다리고 있다. 마치 유대인이 땅에서 메시야가 왔는데, 구름타고 하나님이 오신다고 기다리듯 그러하다.
새벽말씀을 듣는 것은 말씀의 생명나무로서 인생의 마음이 깨달음과 감동을 받으면서 영적인 사랑을 나누는 성결의 시간이다. 예배 시간이 또한 그러하다. 그래서 예배시간에 예배위원들도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행동해야한다. 표상교회는 예배문화가 참으로 고결하고, 성결하였다. 모든 교회가 가서 배워야할 첫 번째 분야로 나는 추천한다.
새벽말씀을 들으면서, “화면에 불과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그가 따끔하게 지적한 것이 ‘기다리는 기독교인의 비유’였다. 이미 만나고 있는데도, 유대인적 사상을 가지고 있으니 모르는 것이다. 사과쥬스를 줬으면 사과를 받은 것이다. 상황과 여건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받았으면 그것이 만난 것이다. 목적이 목적이다.
그를 직접 만나서 악수를 하고 싶었다. 월명동에 갔다. 그는 축구를 하고 있었다. 그가 뻥 찬 공이 날라왔다. 그 공을 잡았다. 그것이 악수를 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런데 그 사람은 ‘공을 잡듯 반드시 악수를 해야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끝까지 기다렸으나, 악수를 못했다. 그래서 풀이 죽어서 집에 돌아갔다. 그 사람은 미련하고, 어리석어서 자신이 악수를 했다는 것을 모른 것이다. 축구를 하는 것을 보는 것이 때론 악수일 수도 있다. 월명동 입구에 들어선 것이 그를 껴안는 것일 수도 있다. 성령은 각양각색으로 다양하게 깨달음과 감동을 준다. “그와 악수를 직접 하는 것”을 “그를 만나는 것”으로 규정한 자는 유대인적 사상의 고정관념이 머리에 박힌 자이다. 고정관념을 빼지 않으면, 평생 힘들다. 고쳐야한다.
만약, 신입생에게 선생님의 직접 관리 및 강의말씀을 연결하는 사람도 있다. 간절한 마음으로 준비할 수도 있다. 하나님과 성령님은 그러한 간절한 기도를 반드시 이뤄주신다. 신입생이 예배에 참석하면서 그의 말씀을 알아듣고, 좋아하고, 깨달음을 얻고, 점점점 신본주의로 변화하는 것, 그것이 영적으로 진행된 결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잘 모른다. 육신으로 해야만 한 것으로 보면, 구름으로 와야만 온 것으로 인정하는 유대인과 무엇이 다른가? 비유와 상징의 다양한 방법으로 생활문제를 풀어야 삶이 편안하다.
정명석 목사님은 어제도, 지난달도, 지난해도, 10년전에도, 40년동안 성도들을 직접 만나서 관리하고, 대화하고, 문제들을 풀어주셨다. 영어(囹圄)의 몸으로 성도들과 끊임없이 소통함으로 만났다. 1)주일말씀 2)수요말씀 3)잠언말씀 4)편지소통 5)성령운동 6)간증집회 7)계시말씀 8)월명동 행사 9)새노래 작곡 작사 10)시집출간 굵직하게 손으로 꼽은 것만 이 정도다. 하나님은 절대신이다. 절대신 성부, 성령, 성자 삼위일체는 육체가 없지만, 일체된 육체로서 사명자를 연단시켜 만들어서 각 시대마다 행하신다. 그처럼 사명자도 다양한 방법으로 행하신다.
그는 지난 6개월동안 모든 성도들을 만났다. 만나고 또 만났다. 오늘도 만났다. 사람은 만나면 대화를 나눈다. 그는 지금까지 엄청난 말씀을 전하셨다. 깊은 사연과 사랑의 말씀이다. 말씀이 흘러나옴은 만났다는 결정적 증거다. 그런데, “언제 만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유대인적 사고를 가진 자들이다. “오늘도 만났고, 또 만나야지. 악수를 할 때도 있겠지, 축구도 함께 찰 때도 있겠지. 내일 새벽에도 만나야지”라고 생각하면, 성약시대 사고관을 가진 온전한 자이다.
오늘 말씀에서 정말로 뜨끔한 훈육이 교역자를 향했다. 교역자가 교인들을 만나지 않으면 문제가 있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선언했다. 이것은 매우 간단한 이치다. 그는 6개월 동안 월명동을 통해서 다양한 기준을 통해서 성도들을 계속 만나셨다. 모든 만남의 장소는 대부분 월명동이며, 만남의 방법은 운동과 예술과 말씀의 행사였다. 그와 같이 교역자는 교회를 월명동으로 여겨야한다. 교회에 온 성도들에게 어떻게 하면 만남을 가질까, 그것을 정말로 깊게 고민해야한다. 새벽예배에 참석한 성도들을 향해서 교역자들이 직접 얼굴을 보고서 말을 하지 않으면, 성도들은 절대로 기억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교역자이 교인들에게 가까이 다가갈까, 그것을 고민하는 교역자는 성공한다. 우리가 월명동까지 버스와 자가용으로 다가가면, 그는 골프카를 타고서 우리들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다양한 만남을 펼쳐주신다. 그와 같이 교역자들도 교인들과 만남을 가져야한다. 교역자들이 할 일이 없다면, 무엇을 해야할지 모른다면, 그것은 일을 안해서 그렇다. 해야할 일이 정말로 많다. 오늘 나왔던 말씀중에서 핵심적으로 2가지가 있다. 교인살피기와 심방이다.
교인 살피기는 교인들을 둘러보라는 것이 아니다. 가령, 새벽예배때 전체를 둘어봐야한다. 기도하는 힘이 어떠한지, 말씀듣는 태도는 어떠한지, 교역자는 면밀히 살펴야한다. 그저 앞좌석에 앉아서 말씀만 들으면 안된다. 성도들의 분위기를 면밀히 살펴야 교육을 할 수 있다. 또한 새벽예배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을 파악해서 어디서 새벽예배에 참석하는지, 혹은 새벽말씀은 듣고 있는지, 살펴야한다.
주일예배도 마찬가지다. 주일예배에 참석하지 못한 성도가 있다면, ‘불참’으로 표시해서 입력만 할 것이 아니다. 일요일 저녁에는 예배에 나오지 못한 성도에게 바로 전화를 해서, 말씀의 핵심을 전해줘야한다. 그것이 교인을 살피는 정성이다. 예배가 시작하기 전에는 설교와 사회를 맡지 않은 지도자들은 맞이활동을 통해서 성도를 만나야한다. 성도들이 교회에 올 때 교역자단은 모든 것을 행해야한다. 가장 좋은 것이 맞이활동이다. 맞이활동을 예배위원에게만 맡기면, 교역자단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예배가 끝나면 제일 먼저 교인들을 만나줘야한다. 성도들의 이름은 모두 암기하기 위해서 집에 부서별로 명단을 붙여놓고 수시로 불러야한다. 이름을 완벽히 외워서 ‘000 집사님’이라고 부르면, 그 집사는 교역자를 새롭게 본다. 일하는 자들과 친한 자들은 이름을 부르면서 평범하게 다니는 성도들의 이름을 알지 못하면 교역자가 교인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것이다.
심방(尋訪)은 찾을 심(尋), 찾을 방(訪)이다. 정명석 목사님은 월명동에서, 주일단상에서, 사연편지에서, 운동 중계방송에서, 새벽단상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성도들의 마음속을 찾아오신다. 그와 같이 교역자도 교인들을 직접 심방해야한다. 첫째, 가정심방이다. 둘째, 부서심방이다. 셋째, 개인심방이다. 심방은 찾아가서 힘든 문제를 풀어주는 것이다. 들어주는 것이다. 기도하고 협력하는 것이다. 교역자가 교인의 마음을 위로하면, 교인들도 교역자의 애로사항을 알고서, 언제나 마음을 표현한다.
교역자에는 2가지 종류가 있다. 1) 교회의 교역자 2) 교인의 교역자. 교역자는 교회에 파견된 목회자인데, 교인들을 만나주지 않으면 그저 교회의 교역자로서 사명기간만 채우다가 바뀐다. 이러한 교역자는 공무원 스타일의 교역자이다. 반면 교인의 교역자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서 교인들을 직접 만나고, 문제를 듣고, 함께 어울어지면서 대화하면서 모든 성도들의 슬픔과 기쁨을 동참하는 교역자이다. 교회의 교역자는 되기 쉬워도, 교인의 교역자는 되기 어렵다. 교인의 교역자가 되는 교역자는 그리스도의 심정을 가진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