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석 목사님은 설교할 때, 본문과 A4용지 1장을 들고서 하신다. 설교원고는 경험을 통해서 순식간에 끌어낸다. A4용지에는 줄거리의 핵심 내용이 적혀있다. 이는 작가로서 화법이다. 요리사는 어떤 요리를 만들겠다고 하면, 그 요리제목와 핵심 과정만 적어놓고, 나머지는 익숙한 경험으로 모든 것을 처리한다.
가끔 내게 강의하는 법을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성경공부에 대한 강의법도 있고, 사회에서 강의하는 것도 있다. 강의는 1명, 5명, 10명, 100명 등을 놓고 특정한 주제에 대해 1시간 안팎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설교는 종교적 색채가 매우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이 잘 이해하도록 설명해주는 것이다. 대표기도는 성도들의 마음을 하나로 집결해서 하나님을 그 교회에 모시고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다.
모든 내용을 적어서 설교를 하거나, 아무 내용을 적지 않고서 설교를 하는 것은 헤맬 확률이 매우 높다. 강의도 그렇고, 설교도 동일하다. 강의는 이미 정해진 과목이고, 설교는 강의보다 자유롭고, 일상생활과 깨달음이 융합되어 있다. 설교를 잘하는 것은 개인의 경험이 함축되어야한다. 강의는 경험이 들어가지 않아도, 설교는 개인의 경험을 통해서 성도를 감흥시키는 것이 꼭 필요하다.
모든 원고를 적어서 스크린에 띄워서 그것을 읽으면서 설교하는 성직자가 있다면, 참으로 한심한 경우라고 할 것이다. 첫째, 성도들은 이미 성직자를 안 볼 것이고, 둘째, 성직자는 성도들과 교감을 하지 못할 것이다. 성직자가 설교를 통해 성도들과 함께 흥분하는 설교를 하려면, 미리 원고를 써서 외치는 것부터 하지 말아야한다. 단상에서 써서 외치는 것이나, 멀리 스크린에 띄워서 하는 것이나 모두 동일하다. 설교는 뉴스가 아니라서 그렇다.
100번, 1000번 말했던 이야기지만, 말과 글은 전혀 속성이 다르다. 마치 신경과 호르몬처럼 다른 것이다. 신경과 호르몬은 뇌와 몸이 소통하기 위해 도구로 사용되는 시스템이다. 신경은 유선으로 연결되어서 매우 빠르고 즉각적이지만, 순간적이다. 호르몬은 무선으로 연결되어서 느리고 지속적이다. 둘은 모두 소통을 위해 존재하지만, 효과도 다르고, 사용법도 다르다. 말은 신경과 같고, 글은 호르몬과 같다. 말은 즉각적이고, 말한 즉시 사라지는 속성이 있다. 특히 말은 듣는 상대와 청중과 교감하면서 현장의 언어로서 사용되는 매우 독특한 소통의 도구이다. 글은 ‘멀리’ ‘오랫동안’ 남아지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말은 현장성이고, 글은 영원성이다.
글을 써서 원고를 보면서 설교하는 것은 애인에게 편지를 써서, 만나서 그 편지를 읽어주는 것과 같다. 편지를 쓰는 이유는 너무 멀리 떨어져서 그렇다. 그런데, 갑자기 애인을 만났다. 애인을 만났으면 대화를 나누면 되는데, 편지로 대화를 나누면 그 애인이 어찌 생각하겠는가? 감흥이 일어날 수가 없다. 현장에는 말하는 화자와 듣는 청자가 있는데, ‘글’ 때문에 화자와 청자는 멀리 떨어지는 ‘투명의 벽’이 생긴다.
이러한 상황은 PPT에서도 자주 발생한다. PPT를 활용해서 강의를 하는 사람들의 위험성은 PPT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정보전달을 위해서 PPT만 계속 넘긴다. 교육생들은 뭔가를 배운 것 같은데, 도대체 무엇을 배웠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PPT를 그냥 나중에 메일로 보내주면 좋을텐데….. 그것도 하지 않는다. PPT보다 더 막강한 동영상은 교육생들이다.
PPT는 ‘줄거리’의 ‘표지판’ 정도로 활용해야한다. 글은 글이고, 사진은 사진이고, 영상은 영상이다. 현장에서는 글도, 사진도, 영상도 무익하다. 현장에 있는 그 강사와 교육생이 서로 얼굴을 보고 있어서, 그것이 가장 막강한 동영상이라서 그렇다. 그런데, 현장의 동영상은 틀지 않고, 전혀 엉뚱한 것을 틀어주니, 재미가 없고, 흥분이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강의가 좋은 강의일까? PPT를 탈출한 강의다. 교육생을 보면서 하는 강의다. 교육생에게 마이크를 넘기는 강의다. (마이크를 넘길 때는 반드시 1분동안 요약해서 말하는 훈련을 한 다음에 해야한다. 말하는 법을 교육하지 않고서 마이크를 무조건 주면 안된다. 강의 집중도가 확 떨어질 수 있다.)
어떤 설교가 좋은 설교일까? 설교원고를 써서 읽는 것을 탈피하는 것이고, 성도들의 반응을 보면서 하는 설교이다. 성도들에게 왜 반응이 없냐고 묻기보다, 성도들의 반응에 반응하는 설교가 가장 멋진 설교다. 이러한 설교를 대화식 설교라고한다. 정명석 목사님의 설교 스타일이기도 하다.
가이드에게도 이러한 원리는 적용된다. 가이드의 주된 목적은 ‘알려주는 것’이다. 알려줌에 있어서 ‘모르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듣는 상대가 제대로 듣고 있는지, 혹은 무엇을 알고 싶은지, 수시로 무시로 물어보면서 대화를 나눠야한다. 가이드를 한다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말만 하고서 끝나면, 그것은 로봇 가이드이다. 듣는 사람들에게 질문도 하면서, 가이드도 들으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며 가이드하는 것이 더욱 좋지 않을까?
“질문있는 사람?”이라고 강의도중에 말하면 감히 누가 손을 들 수 있을까? 100명이 모인 곳에서 강의를 할 때, 먼저는 짧은 자기소개를 강사부터 해야한다. 말하는 훈련, 말하는 준비운동을 강사가 먼저 하고, 청중들도 할 수 있게 해야한다. 100명이니까, 1명씩 하면 1시간이 훌쩍 지나가므로, 이때는 무선 마이크를 들고서 10명 정도에게 ‘강사가 했듯이’ 자기 소개를 하도록 마이크를 넘겨야한다. 그렇게 준비운동을 하면서 강의를 하면 질문에 보다 능동적이 될 수 있다.
인체는 제어장치로 구성되어 있다. 마치 창세기 법과 흡사하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먹되, 중앙에 있는 열매는 먹지 못하게 했듯이, 허락과 금지로 되어 있는 것이 인체의 신비로움이다. 이러한 장치는 전문용어로 ‘음성 피드백’이라고 한다. 보일러 작동원리와 흡사하다. 온도가 내려가면 보일러가 작동하고, 온도가 올라가면 보일러는 멈춘다. 사람이 수동으로 틀지 않아도 보일러는 온도에 반응하면서 스스로 작동한다. 인체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혈당이 높아지면 췌장의 베타세포에서 인슐린의 호르몬이 분비되고, 혈당이 떨어지면 췌장의 알파세포에서 글루카곤이 분비된다.
교감신경은 활동력을 불어넣고, 부교감 신경은 활동을 제어한다. 근육은 활동근과 길항근이 함께 작용하면서 근육의 활동범위를 통제한다. 시상하부에서 분비되는 모든 호르몬은 음성 피드백을 통해서 스스로 제어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피드백’은 곧 ‘대화식’을 말한다. 인체는 일방통행이 없다. 모두 쌍방향 소통관계이다. 신경이 그렇고, 호르몬이 그렇다. 강의와 설교도 마찬가지다.
소통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말’이며, 화자와 청자의 ‘말’이 모두 포함된다. 대중강의를 할 때는 PPT를 표지판 정도로 활용해야지, PPT를 주인공을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PPT의 표지판과 배경을 놓고 교육생과 어떻게 교감하느냐가 관건이다. 말의 현장감, 교육생 속으로 공간이동, 교육생에게 질문 던지기, 교육생의 질문에 화답하기, 말의 빠른 템포 등등이 중요하다. 이러한 말의 힘은 근육처럼 그렇게 해보면 금방 강화된다. 강의실력 향상은 강의안을 덮고, 줄거리만 가지고서 대화식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핵심의 사건만 기억하고, 그것을 대화식으로 해보면 강의가 살아서 운동력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