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세월호가 침몰했다. “있으라”는 안내방송을 믿고 있었던 그 학생들은 무참히 침몰했다. 믿음이 얼마나 무력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 인생은 무엇인가!! 그저 하나의 부품이던가!! 그렇게 나는 슬픈 세월을 살아냈다. 한 청년으로 술과 담배를 하던 내가 다시 하나님을 만나서 내 삶을 변화했던 것은 ‘진실한 사랑’의 힘이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오랫동안 미뤘던 숙제를 하는 심정으로 나는 요즘 ‘나의 하나님’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나태함은 어느새 독버섯처럼 내 삶을 갉아 먹었다. 확신은 때론 세뇌의 창살에 인식관을 가둬버린다. 무서운 일이다.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sbs 드라마)을 보면서, 보여지는 것과 내면이 얼마나 다른지, 폭행 남편의 비극을 다룬 그 드라마를 보면서, 신앙인이 가져야할 진실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마지막 장면은 내게 너무 큰 충격을 준다.
재벌의 아내, 남편, 그리고 비서실장. 비서실장이 아내를 질투하면서 그 자리를 탐내면서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남편은 폭행의 정신병이 있다. 사랑하는 아내를 통해서 폭행의 정신병이 고쳐졌는데, 비서실장이 남편을 유혹하면서 결국 폭행의 정신병이 다시 터지면서, 아내를 때린 것이다. 7년동안 폭행에 시달리면서 결국 우울증에 시달려 자살을 시도, 그곳을 탈출한다. 성형수술을 해서라도 재벌의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그녀는 성형수술 후유증으로 기억상실에 걸린다는 설정, 그 과정에서 비서실장이 아내의 자리를 차지한다. 아내의 자리에 앉는 댓가가 너무나 무섭고 섬뜻하다. 바로 폭행을 당하는 것이다. 비서실장이 폭행을 당하면서, ‘아내의 자리를 탐한 것’의 결국을 보여준다. 아!! 이런 곳은 무서운 일이다. 겉은 아내인데, 속은 노예다.
구원은 어디서 출발하는가? 나는 묻는다. 구원은 어디서 말미암는가? 나는 되묻는다. 광야를 걷게 된 이스라엘 백성처럼, 나는 운명처럼 다양한 종교가 있는 광야로 내몰렸다. 그곳에서 보고 들은 내용들은 나에게 혼란과 충격의 모래바람이 불게 했다. 이스라엘은 사막을 걸었다면, 나는 사상의 사막을 걸어간다. “아!! 하나님이시여!! 나를 인도하소서!!”
인생이 얼마나 나약한지, 나는 잔잔히 고백한다. 누구나 한 인생이며, 한 영혼이다. 고향의 어머니를 위해 작은 소망의 기도를 드리고, 내 남은 여생을 위해서 기도를 드리고,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소원을 하나님께 말하고, 그리고 운명같은 광풍을 향해 하나님의 사랑을 붙들었다.
이상세계
대학시절, 멋진 붓글씨로 쓰여진 이상세계가 있었다. 그 필체가 얼마나 수려하던지 폭포수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과연, 그 사인을 벽에 걸어두고서 신앙인들은 밤새 화투를 하고, 포카를 하였다. 나도 그 무리에 포함되었다. 그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으로 알지 못하였던 나의 대학시절, 하나님을 배반하였던 신앙의 참담함이었으니, 나는 그때 살았으나 죽었던 자였다. 진정, 신앙은 무엇인가? 나는 두렵다. 무섭다. 이 광기의 공포앞에 나의 하나님을 간절히 갈망한다. 그것이 인간으로 갖는 본성이므로….. 이 불행의 비극을 하나님께서 종결해주시길, 그 따뜻한 사랑으로 내게 오시기를,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