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나는 어쩔 수 없는 말씀의 사람이다. 오늘도 말씀의 설교를 들었다. 깊은 감동이 물결쳤다. 감흥은 ‘별에서 온 그대’ 또는 ‘겨울연가’ ‘쇼생크 탈출’ ‘노예 10년’ 영화 감동처럼 뭉클했다. 30년간 소속된 교단을 벗어나 다른 곳에서 예배를 요즘 드린다. 말씀이 은혜롭다. 그리고, 모든 설교는 요한복음 1장의 그 말씀을 안내하는 표지판임을 비로소 인지하게 되었다. 예수님도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복하여 십자가를 지셨다. 말씀을 따라 아브라함도 고향을 떠났다. 말씀을 따라 노아는 배를 만들었다. 말씀을 따라 삼손은 이발을 안했다. 말씀을 따라 호세아는 창녀와 결혼했다. 말씀을 따라 예레미아는 민족의 멸망을 예언했다. 말씀을 따라 다니엘은 황제를 탄핵했다. 말씀을 따르지 않은 자들은 바벨탑을 건축했다. 말씀을 따르지 않은 자들은 선악과를 따먹었다. 여기서 말씀은 곧 ‘태초의 말씀’이다. 마지막 생존자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통해서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살아야할지, 대명제를 선언했다. 그것은 곧 말씀이며, 말씀의 육신화다. 예수 그리스도는 곧 말씀이 육신으로 존재하신 분으로, 우리는 말씀을 따라 삶속에서 살아야함을 의미한다. 말씀을 들음으로 하나님이 깨달아지면, 그것이 말씀의 감동이다.
교단마다, 교회마다 다양한 종류의 목사들이 있다. 종교마다 역시 그러하다. 불교는 원효대사처럼 대중속으로 들어가는 스님이 있는가하면, 의상처럼 귀족들을 향해 설법을 하는 스님이 있다. 각양각색이다. 기독교는 바리새파, 사두개파, 세례요한파, 예수님파 등등 다양한 색채가 있다. 바리새파는 율법주의자다. 제도를 숭배하고, 교리를 절대적으로 가르치는 종교집단은 바리새파와 같은 율법에 속한다. 사두개파와 세례요한파는 서로 흡사하다. 단지 사두개파는 세속에 빠진 정치목사이고, 세례요한파는 정치에 개입하면서도 말씀으로 살아가는 종교집단이다. 예수님은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오로지 말씀으로 자신을 변화하는 종교집단이다. 요한복음 1장을 읽어보면, 태초에 말씀이 있었는데,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고 했다. 나는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존재가 마음 깊이 느껴졌다. 이러한 말씀이 바로 요한복음 1장과 맥이 닿는 설교말씀인 것이다. 계시, 묵시, 깨달음, 감동 등등 하나님과 연결되는 모든 것이 바로 말씀의 속성이다. 아!! 얼마만에 느껴보는 감흥이던가!! 유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