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며느리, 여자 사위 시대가 정말 오려나….
남자 엄마, 여자 아빠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차별금지법때문에 기독교계가 조금씩 깨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도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신본주의’로 복귀와 사뭇 거리가 멀 수도 있다. 늘상, 정치권력이 종교의 상투를 잡고 이리저리 움직이므로….. 동성애법이 실행되면, 그 숫자는 점점점 늘어날 것이다.
동성애를 종교적으로 반대하는 곳은 기독교인데, 인권차별의 이름으로 금지하면, 법이 양심을 이기므로 동성애는 자유의 이름으로 허용될 수 밖에 없다. 언젠가는 동성애간 결혼도 합법이 될 수 있다. 누구는 말한다. 누구도 동성애법을 만들지 않았다라고.
동성애법은 없다. 인권의 이름으로 차별금지법이 있는데,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그중 하나다. 인종, 종교, 연령, 성별의 광범위한 차별금지법이 현재 제정되기 위해 진행중이다. 노회찬 의원이 입법발의했다가 폐기되었으나, 현재 다시 논의중이다. UN은 차별금지법을 속히 제정하라고 압박한다.
성경에 보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한다”는 말이 있다. 진리안에서 자유를 말한다. 진리를 벗어나면 자유가 아니다. 도덕시간에 배웠던 ‘자유의 남용’, ‘방종’이 여기에 해당된다. 자유는 법안에서 자유다. 도로의 질서는 교통법안에서 질서다. 기차는 선로위에서 운행이다. 우주는 만유인력안에서 운행이다. 매우 당연한 상식인데, 질서를 구속과 억압으로 풀이하면서 차별금지법이 ‘혼란’을 만드는 것이다.
질서는 무엇인가? 진리는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 질서와 진리는 추상명사이며, 상대적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곧 진리인데,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조차 진리를 ‘태초에 존재하는 말씀’으로 ‘로고스’라고 정의해버렸다. 현실에서는 확인불가능한 태초의 진리를 ‘진리’라고 한 것이다. 본질은 누구도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으나, 존재함을 믿는 것, 그 말씀이 곧 보이지 않는 하나님인데, 예수님이 그 말씀을 행위로 실천한 것이다.
창세기 사건은 다양한 시각으로 재해석된다. 역사적 사건이 현실에 재해석되면서 역사를 통한 현실의 방향을 조명하는 것이다. 역사의 속성이 그렇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법을 정했다. 동산의 모든 실과는 따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의 선악과는 따먹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금지법’을 정한 것이다. 그런데 뱀은 ‘금지법’을 해제하도록 하와를 유혹했고, 하와가 받아드린다. 아담은 하와의 말을 듣고서 함께 따먹었다. 사건의 내막은 그렇다.
인류문명이 에덴동산이라고 하자. 하나님은 양심을 통해서, 기독교의 성경말씀을 통해서, 윤리적으로 ‘동성애=범죄’의 금지법안을 제정했다. 누가 봐도 이것은 상식인데, 양심법은 성적 자유의 이름으로 폐지되었다. 무장해제된 것이다. 성별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도 성적 자유라는 이데올로기가 여기서 출발한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성별차별을 금지할 수 없다. 동성애도 차별할 수 없다. 창세기에서 ‘금지한 것’이 허용될 때, 에덴동산은 무질서와 혼돈의 세계가 되었다. 금지가 존재하는 것은 ‘범죄예방’을 위해서다. 철조망이 걷히니, 무질서가 시작된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는 것은 추방이다. 다른 말로, 뱀의 법이 다스리는 세계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금지한 것을 따르면 하나님의 세계가 되고, 하나님이 금지한 것을 하면(=뱀이 원하는 것을 하면) 뱀의 세상이 된다.
법이 무섭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정말로 무섭다.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고, 둘이 하나가 되는 가정의 구조주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동성애를 합법화하는 것은 뱀의 유혹처럼, 결국 남녀의 구조주의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릴 수 있다. 그것은 혼돈의 세계다. 쓰나미는 바다가 육지를 덮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세기에서 혼돈의 흑암에서 빛을 분리하면서, 구분과 경계, 나눔과 분리로서 각각 경계를 설정하면서 창조역사를 하셨다. 물에서 뭍이 드러나게 하고, 이후 만물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창조역사는 구분과 경계가 존재한다. 이것은 차별이 아니다. 구별이다. 동성애는 차별의 문제가 아니고, 구별을 없애는 무서운 일이다. 성소수자를 보호하겠다고, 인류의 성적 구별을 없앤다면 그것은 인류문명의 혼돈이 시작될 수 있다. 누가 책임지랴!!
*** 법은 미약한 단어로 시작하지만, 결과는 거대한 바위덩이다. 그래서 법을 제정할 때는 어떻게 작용할지 예측하면서 만들어야한다. 차별금지법이 특히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