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젊은 날, 나는 해병대에 자원해서 입대했다. 그곳에서 술과 담배를 배웠고, 세상문화를 접하면서 인본주의 사상이 서서히 물들었다. 고등학교 2학년, 3학년때 매일 새벽기도 조건을 세웠는데, 국민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내 신앙은 식어갔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적응하는 것이 참 힘들었다. 당시 생활을 돌아보면, 어찌 살았던가.
나는 대학생활에 실패했다. 신앙에 너무 몰입하다가 학점이 쌍권총이 되었으니, 그것은 신앙을 이끌어준 선배들의 책임도 없지 않고, 누구든지 각자의 인생은 스스로 지켜야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구조이고, 70년~100년의 시간이 인생에게 주어지는데 그 기간은 결코 짧지 않다. 잘 계획해서 성공적인 인생길이 되어야한다.
제대를 하고도 나는 술담배를 끊지 못하였고, 세상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신앙생활에 대한 간절함은 항상 남아 있었다. 그 어느날, 나는 원리강론을 접하게 되었다. 그것을 보고서 어찌나 놀랬던지, 고등학교때 배웠던 성경지식이 그곳에 있었고, 80%가 비슷했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통령 선거를 하면, 후보자가 2명인데 과연 누가 영적 대통령이란 말인가? 나는 혼동이 찾아왔다. 그게 대학교 4학년 즈음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다. 하나님은 그 누가 영적 대통령인지 내게 답하지 않으셨다. 내가 빠진 내 죄에서 내가 건짐을 받길 원하셨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진실한 어떤 분의 삶을 보면서, “정말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구나. 하나님이 정말로 계시구나. 내가 이렇게 살다가는 안되겠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그 분에게서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인본주의와 투쟁했다. 두렵고 무섭고 치열한 영적 전쟁이었다.
내게 답을 물으면, 나는 예수님이 아신다고 답하겠다. 그것이 정답이 아닐까? 예수님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 땅의 사람들은 선택을 받는 입장에 불과하다.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 깊은 은혜를 받고서, 새로운 신앙생활을 1999년부터 해왔고, 하나님을 향한 신본주의자로 살아왔다. 이것이 내가 배운 참된 신앙관이다.
원리강론과 80% 비슷한 교리를 믿으면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얼마전에는 나머지 20%의 핵심부분이 영락교회의 한에녹 장로가 쓴 영원한 복음의 한때두때반때 풀이과정과 같은 것을 알게 되었다. 원리강론때 받은 충격보다 더 큰 충격이 나를 강타했다. 유대 대백과 사전 제7권 148페이지까지 동일하게 표절했다. 유대 대백과 사전은 영어로만 되어있는데… 나는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예수님은 ‘백성의 죄에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다. 인생은 어찌보면 유약하고, 불쌍하고, 구원을 간절히 갈망하는 미천한 존재에 불과하다. 언제 죽을지 모를 인생앞에 하나님은 그 사랑을 긍휼로 베풀어주신다. 나는 1999년부터 20년간 그 사랑을 진실로 믿는다. 내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고독에 처했을 때에도 하나님은 나를 돌아보시고, 권념하셨다. 인생이 무엇이관대 하나님은 나의 애통과 비통을 들으시고, 외면하지 않으셨을까? 그 하나님께서 내 옆구리를 툭툭툭 건드시면서, 이제는 30년 정든 곳을 떠나자고 하신다. 도대체, 어디로 가자고 하시는지….. 그렇게 나는 신의 부름에 응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