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백성은 양이요, 지도자는 목자다. 누가 진실한 목자인가? 그것을 논할 줄 알아야 속지 않는다. 직장을 다녀도, 학교에 있어도, 예배를 드려도, 그 지도자의 성품을 판단하고 분별해야한다. 진실한 지도자가 누구인지 반드시 알아야한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목자는 양을 아는 법이다.
2천년 전, 이스라엘 땅에는 수많은 지도자가 있었다. 백성을 다스리는 그들은 크게 보면 3종류였다. 로마황제가 파견한 정치 지도자, 유대교가 파견한 종교 지도자, 하나님이 파견한 선지자와 그리스도. 이 중에서 하나님이 파견한 선지자와 그리스도가 참된 목자였다. 누가 보냈냐로 그 지도자의 사명이 좌우되고, 파견된 자는 명령권자의 명령을 수행한다.
빌라도는 로마황제의 명령을 수행했다. 그래서 독수리 문양이 새겨진 로마황제의 깃발을 예루살렘 성전에 꼽고, 하나님의 권위를 추락시키면서, 성전의 기금을 마음대로 손을 대고 건축공사를 진행했다. 헤롯대왕도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데 모든 정치자금을 쏟아부었다. 백성의 여론이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했으니, 그렇게 한 것이다. 빌라도와 헤롯은 모두 로마황제가 파견한 인물들이며, 땅의 권세자가 보낸 자들이다. 땅의 권세자가 보낸 자들은 땅의 것들에 관심이 있다.
교회 목사가 목사로서 직무를 제대로 하는지, 그 행함으로 판단해야한다. 성도의 고통을 알고서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기도하는 목사인지, 아닌지, 성도들은 면밀히 분석해야한다. 그저 자리에만 급급하면서 군림하는 직업 목사들이 많다. 그리스도의 심정을 가진 목사는 성도의 고통속에 참여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영광의 면류관을 쓰는 목사는 거짓 목사요, 백성의 고통에 참예하여 가시 면류관을 쓰듯 고난에 참여하는 목사는 참된 목자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내려와서, 군림하지 않고 섬김을 다했다. 평신도의 발을 씻기는 목사가 그리스도의 심정을 가진 목사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비롯해서 12사도의 발을 씻겼다. 죽음의 선고를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오로지 자신에게 맡겨진 평신도를 위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목사가 예수님의 심정을 가진 자들이다. 이러한 심정이 없다면, 빌라도나 헤롯 정도의 정치적 목사에 불과함을 알아야한다.
이스라엘에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도 있었지만, 로마 황제가 파견한 빌라도와 헤롯도 있었다. 군림하는 목사는 빌라도와 헤롯 부류다. 그렇게 판단하면 된다. 섬김을 다하면서 평신도의 고통을 들어주고, 아파하고, 눈물로 참회하면서 행함으로 평신도의 마음을 얻는 목사가 참된 목사다.
바리새파와 사두개인은 유대교가 파견한 목사들이다. 이들은 종교의 제도권에 있으면서 직업 목사들이다. 민심을 얻지는 못했다. 예수님이나 세례요한은 백성의 민심을 얻었으나, 유대교의 파견을 받은 자들은 백성의 민심과 멀었다. 그 이유는 백성의 고통을 외면해서 그렇다.
로마와 이스라엘은 전쟁을 했다. 로마는 가해자, 이스라엘은 피해자로서 엄청난 피의 복수를 했다. 그때 예수님이 오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누구 편을 들지 않고, 백성과 함께 했다. 로마는 이스라엘을 식민지로 다스렸고, 이스라엘은 백성들을 동원해서 정치적 독립을 추진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백성을 위해서 백성의 고통을 들어주신다. 누구도 아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한다.
내 인생의 문제를 놓고, 내 삶의 고통과 신음을 누가 들어주는가? 들어주는 그가 바로 하나님의 파견을 받은 진실한 사람이며, 사명자이다. 목사의 사명은 그리스도의 대리인이다. 그리스도의 심정을 가진 자들은 평신도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 백성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목사는 빌라도, 헤롯, 바리새인, 사두개인과 같은 거짓 목사다. 이것이 아주 불편한 교회의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