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간혹 잘못된 늪에 빠진다. 그래서 인생이 망조에 들거나, 그 사건으로 개혁하거나, 둘 중 하나다.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후회(後悔)도 참회(懺悔)가 되고, 참회(懺悔)가 나를 참된 사람이 되게 할지라. 내가 그 어떤 곳에 처했어도, 그런 과거가 지금의 현재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느냐가 핵심이다. 돌맹이가 있어도, 부정적인 자는 걸림돌로 불평하고, 긍정적인 자는 자신을 극복하는 디딤돌로 삼는다. 장애물은 마음속에 있을 뿐이다.
40일을 금식하고, 마귀의 야비한 시험을 받았던 광야의 3대 시험을 놓고서, 예수님이 성령께 불평할 수 있을까? 사막으로 인도하신 분은 성령님이시다. 믿음위에 있는 우리는 그것을 간과할 수 없다. 왜 나를 젊은날 이단으로 인도하여 빠지게 했을까? 요셉의 물음이요, 다니엘의 질문이다.
왜 젊은날 형제들이 나를 함정에 빠뜨려, 노예로 팔았을까? 요셉은 우상국가에서 노예생활을 했고, 감옥에 갇혀 죄수로 살았다. 성령께서 인도함으로 어떤 곳에 있어도 요셉과 함께 했다. 악하게 대한 형제를 생각하면, 늪은 더욱 깊어질 뿐이다. 형제에 대한 원망으로 성령이 가려질 수도 있다.
예수님은 마귀의 유혹에도 ‘말씀과 하나님’의 존재를 망각하지 않았다. 돈, 부귀, 영화, 권력, 압제, 배고픔, 고독, 친구, 술, 정욕, 문화, 오락, 이성, 향락, 의심, 탐욕, 고집 등등 세상 것들로 하나님이 가려지면 안된다.
다니엘도 자신과 민족이 왜 포로생활을 하는지, 성공한 정치인이 되었어도 슬픔의 베옷을 평생 벗지 않았다. 민족이 당하는 억울함의 근본문제가 무엇인지, 하나님께 날마다 기도한 것이다. 요셉과 다니엘의 3가지 공통점은 ①국무총리 직업 ②우상국가 ③기도의 삶이다.
나는 30년간 있었던 교단을 떠났다. 나로서는 내 자신을 부정하는 것처럼, 힘든 일이었다. 내가 떠났던 곳에 계속 머물러 있는 사람도 있고, 떠나면서 갖은 욕설을 퍼붓는 사람도 있고, 침묵의 마스크를 쓰는 사람도 있고, 머물면서 범죄에 침묵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떠나면서 내 삶을 참회하거나, 나의 잘못을 반성하거나, 나를 돌아보는 글을 쓰면서 신앙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삼는 부류다.
나는 교리와 제도 때문에 그곳을 떠났다. 가장 불편한 교리는 원리강론이다. 원리강론의 표절사건은 1999년에 알았지만, 한때두때반때의 완벽한 설계는 사명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내 삶이 온전한 것도 아니다. 나는 대학시절 이중적 모순에 빠져서 살았다. 하나님의 은혜로 1999년에 새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서, 말씀을 중심하는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고, 한에녹이 쓴 영원한 복음의 존재를 확인하고서, 교리의 표절 때문에 그곳을 벗어나게 되었다.
성령 상징의 교리도 내가 인정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성령의 상징체, 혹은 복직된 하와의 교리는 절대권자의 도장이 찍힌 진리가 되므로, 사람이 성령이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 누가 성령 상징체의 말을 부정할 수 있는가? 그 누가 복직된 하와의 말에 토를 달 수 있는가. 성령 상징체이므로, 모든 행위에 대해 성령의 감동을 준다고 믿어야만 한다. 이것이 사람이 신이 될 때, 나타나는 제도적 부작용이다.
하나님은 말씀을 받은 자를 신이라고 하였으나, 제도적으로 “사람은 신이다”라고 설정한 적은 없다. 제도적으로 “사람은 신이다”라고 설정하는 것이 바로 인본주의요, 이집트의 논리요, 북한의 논리다. 북한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이 신(神)이다. T종교는 문** 총재가 독생자요, 한** 어머니가 독생녀다. 과연 하나님이 창조한 새로운 종교인가? 살아있는 사람을 신이라고 믿게 될 때, 예수님의 3대 시험에서 마지막 문제에 봉착한다. ‘절하라’에 걸려서 우상숭배와 같은 과잉충성의 폐단이 발생한다.
결국, 둘 중 하나다. 누구를 향해 절대믿음을 갖느냐이다. 절대권자로 고백하면, 모든 교리를 절대로 믿어야한다. 아니면, 떠나야한다. 나는 의심이 가득한데, 그 상태로 계속 머물수는 없었다.
마음은 “그녀는 인간으로서 성령이 될 수 없다.”고 하면서, 입술로는 “아멘 아멘”하면서 공산주의자처럼 동조하는 내 자신이 너무 혐오스러웠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의견을 표시하는 그런 제도가 되지 못하여서, 나는 그곳을 떠난 것이다. 내가 옳은지, 아닌지, 나는 여전히 미궁속이지만, 나의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심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