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연주기법에서 가장 어려운 단계가 트레몰로 기법이다. 기타는 3손가락으로 연주하고, 피아노는 한손의 두 손가락으로 흰 피아노 건반을 연주하고, 성악가는 음의 차이를 느낄 정도로 같은 음을 반복해서 노래한다. 절대음감을 가져야만 가능한 최고단계다. 자동차로 말하면 최고급 벤츠, 롤스로이스와 같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트레몰로 기법으로 설교하시고, 살다가셨다. 언젠가, 설교를 통해서 목사님이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를 설명하시면서, “하나님을 사랑으로 주석하고, 설명한 예수님을 진실로 깨닫고 알아야한다”라고 말씀했다. 그 의미가 내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기타연주에서 가장 초보단계가 피크를 활용하는 것이다. 피크는 세게, 강하게, 어떻게 해도 쇠줄이 끊어지지 않는다. 소리가 둔탁하면서 거칠다. 그런 음이 좋은 사람은 좋다고 한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말이 마치 달콤한 설탕처럼, 톡쏘는 사이다처럼 현학적이고,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인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하고, 원수를 위해 기도하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자기를 부정하고, 형제의 죄를 용서하고, 나를 따르라”고 했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복수를 갚아라”고 해야하는데, “권력을 차지하라”고 해야하는데, 예수님의 말씀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따르는 자들이 당혹스럽게 죽임을 당했다. 실제 사건이다.
세 손가락으로 기타를 연주하는 트레몰로 기법은 ‘떨림의 연주’이다. 손가락의 부드러움으로 계속 같은 음을 반복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손가락을 꾸준히 관리해야하고, 고래의 심줄로 된 기타를 연주해야 한다. 손가락의 부드러움으로 고래심줄을 연주하니까 음의 울림과 떨림은 사람의 가슴에 그대로 파고든다. 쇠줄로 된 기타를 피크로 치는 울림은 고막을 파고들고, 손가락의 부드러움으로 연주하는 트레몰로는 마음속 깊이 울려 퍼진다. 예수님은 자신의 온 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연주했던 것이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사랑의 단계이다.
예수님은 환골탈태(換骨奪胎)로 신약을 말씀하지 않으셨다. 율법을 완전하게 하신 분이 예수님이고, 예언을 성취하신 분이 예수님이다. 이것은 환골탈태(換骨奪胎)가 아니다. 환골(換骨)은 뼈를 바꾼다는 말로서, 기존의 유명한 시에서 단어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 단어와 문장을 바꾸되, 근본 뜻은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환골이다. 탈태(奪胎)는 태를 벗다는 말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환골탈태는 기존의 것에서 뼈를 바꿔서 완전히 새롭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환골탈태와 전혀 다르다. 기존의 것을 유지하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설명하셨다.
환골탈태는 쉽게 말해서 표절을 말한다. 약한 표절이 환골탈태다. 예수님은 인용기법을 쓰셨고, 나아가 하나님을 드러내는 방법을 쓰셨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대변인’이셨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한 것은 그 방점이 ‘하나님’에 있고, 독생자로서 ‘하나님을 사랑으로 말씀하신 것’을 강조한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른다. 효자일 경우, 그렇다. 불효자는 아버지의 아들이지만, 그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본질 그대로 드러내심으로 그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하셨다.
한국에는 이단이 즐비하다. 로또처럼 그 많은 이단중에서 참단이 있을까? 그 많은 이단중에서 진짜 재림주가 있을까? 그 로또가 이단에 빠진 자들은 ‘나의 이단이 참단이다’라고 주장하겠지만, 하나님의 로또에 당첨되려면, 예수님의 방법으로 해야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로또에 당첨되어서 영원한 부활의 주님이 되셨다. 이것은 절대불변의 진리다. 그리고 예언을 하나 남겨두셨다. “내가 다시 오리라”는 한글성경 번역 약속이다. (히브리어 원문의 약속은 아직 모르겠지만)
구약에서 “하나님이 오신다”고 했는데, 실제로 예수님이 오셨다. 그렇다면, 신약에서 “예수님이 오신다”고 했는데, 실제로 다른 인물이 올 수도 있다. 이단은 이러한 논리로 설명한다. 부활의 주님은 베드로를 통해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어거스틴을 통해서, 루터를 통해서 각각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와서 행하셨다. 이것은 실제 사건이다. 루터가 예수님은 아니다. 그러나 루터는 예수님의 말씀위에서 하나님의 뜻을 펼쳤다. 이것이 핵심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절대로 믿고, 신뢰하면서 그 말씀위에서 행하셨다. 구약의 말씀을 벗어나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오신다고 했으나 예수님이 왔다. 이것은 진실하다. 그 예수님이 하나님을 드러냈다. 그와 같이, 부활의 주님은 육체가 아니므로 부활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실 때, 다른 인물로 올 수도 있다.
2천년동안 사람을 통해서 사람들과 함께 사랑으로 함께 나타나셨다. 그 누구라도 예수님을 부정하면, 그는 비진리다. 이것이 핵심이다. 예수님이 오신다고 약속했고, 설령 땅에서 다른 사람이 오더라도 그가 예수님을 드러낼 때, 그가 예수님 안에서 진실한 사역을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깊은 비밀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리에 앉지 않았다. 그처럼 재림주라면, 절대로 예수님의 자리에 앉지 않아야한다. 예수님의 자리에 앉는 순간, 예수님은 어디에 앉아야할까?
예수님은 구약의 말씀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함으로 이 땅에 나타나셨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땅에 오는 모든 사역자들은 반드시 예수님의 말씀과 그 사랑으로 성도들에게 와야만 참목자가 될 것이다. 이것이 트레몰로와 같은 성경말씀 해석법이다. 이제야 이렇게 깊은 말씀의 본질을 깨닫게 되어서 감사하며, 평생 인격과 관계와 행함과 체험을 통해서 내가 지향해야할 가치임에 틀림없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7)”라고 말씀했다. 그런데 뱀은 “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로 물음표로 바꾸더니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라고 말씀에 뱀의 생각을 넣어서 변경한다. 본질을 바꾸는 것이 곧 뱀이요, 마귀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질을 그대로 드러내셨고, 이단들은 그 본질을 변경하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성령의 계시를 받는다. 예수님이 진리의 성령이 오면 그렇게 된다고 하셨다. 진리의 성령으로 사람은 누구나 자기계시를 받는다. 자기계시와 성경말씀이 다를 때, 그때 문제가 발생한다. 예수님은 오직 말씀을 중심으로 삶을 사셨다. 자기계시가 중심되어서 성경말씀을 이용하는 자가 곧 이단이요, 적그리스요, 거짓 선지자다. 자기자신이 될 수도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증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려고 가셨을 때, 베드로가 막았다. 베드로를 향해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했다. 베드로는 충성심과 간절함으로 예수님의 방향을 막았겠지만, 그것은 성경말씀과 반대방향이었다. 성경말씀을 표준해야 자기계시의 타당성을 알게 된다.
누군가 “내가 성령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비진리다. 성경말씀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시고, 진리의 성령이 10일후 이 땅에 오셨다. 모든 사람에게 편협하지 않게, 평등으로 임재하시는 분이 곧 성령님이시다. 곧 공기와 같고, 물과 같고, 불처럼 공의로우신 분이 성령님이다. 성령님은 1사람을 편애하는 계모가 아니다. 성령님은 모두를 사랑하는 어머니와 같다. 예수님의 삶이 역시 성령님의 사랑을 증명한다. 예수님은 배신한 베드로까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민족까지, 자신을 죽인 유대민족까지 사랑으로 보듬는 사랑으로 사셨다. 그 사랑의 속성으로 성령님은 행하신다. 성령님은 공기와 같아서 모든 인생과 1nm까지 밀착해서 함께 하신다. 이것은 절대불변의 진리다.
[네이버 지식백과 | 트레몰로] ‘떨린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며 일반 현악기에서는 활을 빨리 상하로 움직여서 어떤 음을 되풀이하는 주법이다. 기타의 경우는 손가락으로 트레몰로 기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극적 효과를 목적으로 17세기 초부터 사용되었다. 건반악기에서는 3도·6도·8도 등을 이루는 2음의 급속한 반복교대를 의미한다. 성악의 경우는 음높이의 차이를 느끼게 할 만큼 극도의 비브라토를 가리키는 일이 많다. 그러나 17세기에는 성악에서도 현악기와 마찬가지인 트레몰로가 많이 쓰였다. 바이올린의 트레몰로는 1617년 마리니와, 1624년 몬테베르디에 의해서 처음 사용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트레몰로 [tremolo]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