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한자이름은 ‘야소’(耶蘇_耶穌)라고 한다. 외래어가 들어오면, 그 표기권한이 중국에 있어서 그렇다. 중국은 표음문자가 없다. 우리는 세종대왕덕분에 표음문자가 있고, 일제 식민지 치하를 거치면서 독립후 공식문자를 한자에서 한글로 변경했다. 모든 문서는 한글중심으로 변경되었고, 소리글자가 전면에 나섰다. 반면, 중국은 한자가 중심이다.
외래어에 대해 한자는 비슷한 소리의 한자어를 찾아서 새로운 이름을 만들게 된다. 예수님의 발음이 ‘야소’와 비슷해서, 그 한자어로 야소(耶蘇)를 쓴 것이다. 耶蘇의 한자어를 사용한 것은 뜻을 고려해서 표기한다. 耶는 귀와 언덕이 합쳐져서, 넓은 귀를 뜻한다. 하나님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들으심의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귀를 향해 하소연하는 것이다. 신문고를 울리듯 간구하면, 하나님의 고막이 울린다. 耶가 그런 뜻이다. 蘇는 풀과 물고기와 벼의 합성이다. 풀은 약초, 물고기는 잉어, 벼는 찹쌀을 의미한다. 잉어탕은 죽은 사람도 살린다. 다시 살아날 소(蘇)는 곧 부활의 주님을 뜻한다. 야소(耶蘇)는 다시 살아난 하나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부활의 주님이다.
그런데, 한글성경으로 변경될 때 이름이 다시 바뀌었다. ‘예수’가 되었다. 야소님보다 예수님이 보다 부드럽고, 친밀감이 있다. ‘예’와 ‘수’는 한국문화에 상당히 고귀한 언어다. 누가 불러도 부드럽고 친밀감이 있는 이름임에 틀림없다. 예수(禮首) 또는 예수(禮秀)로 한자음이 정해지면 좋은데, 한국어에는 외래어를 한자음역으로 바꾸는 권한도 없고, 기준도 없다. 중국에만 있어서 그렇다. 만약, 한국어로 한자음역을 바꾸는 기준이 정해진다면, 이 또한 한자의 혼동이 발생할 수도 있다. 같은 외래어를 놓고, 중국과 한국의 한자이름이 서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예수’는 한국만의 고유한 주님의 이름이므로, 한자어를 표기할 수도 있다. 예수(禮首)에서 禮는 예배이며, 예절이다. 禮는 제사를 지냄에 있어서 풍성한 열매를 드리는 모습을 의미하는데, ‘제사’는 곧 신앞에 경배하는 것이다. 예배는 신앞에 나가는 인간의 인격이며, 예의범절이며, 격식이다. 예수님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하늘앞에 나가는 사람의 예절을 몸으로 보여주신 분이다. 首는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므로, ‘首’가 어울린다. 혹은 빼어날 수(秀)도 매우 적절하다. 秀는 벼이삭이 고개를 숙인 모습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데, 주님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에 임재하여, 제자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제자들에게 권력의 유혹을 이기는 방법으로 세족식의 지혜를 알려주셨다. 섬김의 방법이 권력을 이기는 비결이다. 예수님은 식민지에 처한 유대나라에, 일반 평민의 집안에서, 마구간의 허름한 공간에서 태어나, 십자가의 형틀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높은 왕에서 낮은 죄수까지 모두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신 예수님의 그 사랑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 겸손함 그 자체였고, 인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