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왕이 된 남자’는 맹자 사상을 실제로 적용한 내용이다. 맹자 사상은 정도전이 가장 좋아했던 책인데, 패역한 군주를 바꾸는 역성혁명이다. 역성혁명(易姓革命)은 성씨를 바꾸는 혁명으로, 왕조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왕을 바꾸는 혁명과 왕조를 바꾸는 혁명은 차원이 다르다. 예수님은 왕조를 바꾸는 혁성혁명이다. 아담안에서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의 인물들은 모두 왕이 바뀌는 혁명이고, 예수님은 구약을 신약으로 완전히 다르게 재창조한 왕조혁명이다. 그래서 아담은 첫아담, 예수님은 후아담이다.
‘왕이 된 남자’는 사건전개가 독특하다. 정말로 엉뚱하고, 획기적이다. 마치 역성혁명처럼 사건이 흘러간다. 신하가 실제로 왕을 죽였다. 역성혁명인데, 광대를 하던 천민을 왕으로 세우고서 진짜 왕을 죽였다. 그러한 설정을 통해서 “진정한 왕이 누구인가”를 묻고 있다. 광대로 세운 왕이 백성을 사랑하고, 본래 왕은 백성을 착취하고 사람을 살인한다. 그렇다면 누가 진짜 왕이고, 누가 거짓 왕인가? 결국, 왕도 하나의 광대에 불과함을 말해준다.
사람들이 믿는 왕도 꼭두각시에 불과함을 ‘광대’를 통해서 말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심부름꾼에 불과하다. 국민의 대리 통치자가 바로 대통령이다. 그처럼 왕도 하늘에서 허락한 권력이며, 패역한 군주는 하늘이 백성을 통해서 바꾼다. 왕권통치에서 역성혁명을 주장한 맹자사상이 민주주의로 발전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선거제도를 통해서 대통령을 바꾼다.
“힘을 갖고 싶소, 약한 자들을 구하는 힘을 진정 갖고 싶소”
광대출신 가짜 왕이 진짜 왕에게 버림을 받고, 늪에 빠지자,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서 도승지를 찾아가서 부탁한 말이다. 도승지는 대동법을 시행하기 위해서 혈통의 왕을 버리고, 약속의 왕을 택한다. 그것이 하선이다. 하선은 혈통으로는 왕이 아닌데, 성품으로는 왕이다. 과연 그가 진정한 군주가 될 수 있을까?
“왕이 되면, 짐승의 권력을 갖는 것이다. 짐승처럼 살이 찢기고, 심장이 도려지고, 신하들이 너를 잔혹하게 물어 뜯을 것이다. 힘을 갖는 순간 그 힘은 갈가리 찢겨질 것이다. 왕권은 네가 원하는데로 하는 곳이 아니라 신하가 원하는데로, 백성이 원하는데로, 하는 것이다. 그래도 왕의 힘을 원하느냐”
도승지가 최후통첩을 한다. 이것은 짐승의 권력을 난절하게 묘사한 것이다. 과연 이런 권력을 원하는가? 그때 하선은 “그렇다”고 대답하고, 도승지는 비로소 새로운 왕을 추대하면서 음모가 시작된다. 어찌보면, 세상권력에서 취할 수 있는 임시방편의 새로운 길이다. 그러나, 남편을 5번 바꾼 사마리아 여인에게 6번째 남편처럼 그러한 왕이 될 뿐이다. 제도 자체가 그러해서 그렇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말씀하신 것이다. 십자가의 반대말은 ‘생명’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십자가를 죽음으로 생각해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십자가는 짐승의 권력을 반대한다. 십자가를 지기전에 예수님은 세족식을 행하셨다. 그리고 성만찬을 하셨다. 성만찬이 곧 십자가다. 3일의 골고다 고역과 부활이 십자가다. 3년의 목회사역이 곧 십자가였다. 이것은 섬김의 권력을 말한다. 에덴동산에 생명나무와 선악나무가 있다고 했다. 세상에는 2개의 권력이 있다. 하나는 주님의 권력, 다른 하나는 짐승의 권력이다. 누구를 섬길 것인가?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 생명나무를 먹으면 영생한다. 권력의 속성이 근본적으로 다름을 말하는 것이다. 십자가는 곧 형제를 서로 사랑하고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다. 이것이 사랑의 권력이다. 반면 짐승의 권력은 상대의 죄를 찾아내서 죽이는 것이다. 율법의 권력이 이와 같다. 동물의 피를 죽여서 사람이 살아가듯, 짐승의 권력은 형제를 죽여서 자신이 살아가는 권력이다. 예수님의 권력은 형제의 허물을 덮어주고, 자신을 희생해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인자의 권력이다. 영원한 권력은 바로 ‘주님께’ 있다.
언젠가 교회에서 목사님이 “유대인은 결국 바라바를 택했고, 가이사를 택했다. 평화의 주님을 버리고, 무력투쟁의 바라바, 짐승의 권력자 가이사를 택했다”라고 말씀했다. 십자가에 못을 박고서, 예수님을 버렸던 그들은 결국 짐승의 권력에 예속됨으로, 친로마 지도부와 반로마 지도부는 AD70년에 멸망당했다. 짐승의 권력은 결국 야수처럼 죽일 뿐이다. 로마의 시작은 늑대다. 늑대는 결국 살육한다. 예수님은 그것을 이미 아시고, 로마의 권력을 없애는 것은 하나님의 힘으로 가능함을 말씀하셨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