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예배가 풍성했다. 나는 주일에만 예배를 드리는데, 성도들의 진실함이 은혜롭다. 십자가처럼 모두 같은 심령으로 낮은 자세로 하나님과 성령님을 요청하는 대표기도는 아름다운 선율이며, 성가대의 찬양은 깊은 계곡의 폭포수같았다. 세속에 물든 탐욕을 씻듯, 온유한 합창의 울림에 내 마음의 간구를 담는다. 한 사람 한 사람 피아노 건반처럼 찬양의 기도를 드리는 모습은 마음에 악보를 남긴다.
예배말씀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나은 의로움”에 대한 설교였다. 강해설교였다. 본문이 마태복음인데, 마태가 출판기념회를 하듯이 복음서의 출간배경과 편집방향과 본문내용의 의미를 상세히 설명하셨다. 마태도 그 시대에 마태복음을 읽은 독자들에게 그렇게 설교를 했으리라. 모세5경처럼 예수님의 설교 두루마기 5개를 마태복음에 담고, 8복(축복)과 8화(재앙)를 각각 구분해서 그 시대 종교인과 정치인과 백성과 성도들에게 말씀을 선포했다.
“산상수훈은 왕되신 주님의 취임연설입니다.”
– 설교말씀 요약노트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나은 의로움은 “의의 본질로서 죄를 대신 짊어지는 희생과 구속의 삶과 행위와 기도”로 정의된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으나, 오늘 설교를 통해 이해된 내용이 그렇다. 바리새인은 회당에서 아름다운 언어로 기도할 줄은 알았으나, 하나님께 형제의 죄를 대신 속죄하는 정의를 외면했다. 바리새인은 세리와 창녀와 로마를 향해 율법의 범죄로 정죄한 내용을 서술할 줄은 알았으나, 그들이 죄를 자복하도록 바리새인이 대신 속죄하는 속죄제를 드리지 못했다.
예수님은 율법과 로마법으로 사형수로 판결되어, 율법과 로마법에 속한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거룩한 제사를 드리셨다. 바라바가 메달릴 십자가에 주님이 대신 메달려, 그 시대앞에 한줄기 구원의 빛을 비추셨다.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참된 인격이며, 옳은 행실이다.
예배 후, 성도들과 식사도 맛있었다. 비가 왔다. 그래서 은혜의 단비가 내게, 교회에 내렸다. 목사님은 “1월의 강수량이 0mm였는데, 명절을 앞두고 단비가 내립니다. 그처럼 말씀의 단비가 성도의 마음에 내리길 원합니다”라고 축복했다. 말씀이 살과 피가 되어, 인생이 살아갈 힘을 주니,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