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칭의(以信稱義)는 이신득의(以信得義)라고도 한다. 믿음으로서 의인이 된다는 의미다. 기독교의 핵심교리다. ‘믿음의 의’가 아니다. 믿는 것이 의가 아니고, 믿음으로서 주님의 의로움이 믿는 자에게 전가(轉嫁)된다. 이것을 십자가의 전가(轉嫁)라고 한다. 전가(轉嫁)에서 가(嫁 )는 시집갈 가(嫁)이다. 여자와 집(家)이 합쳐져서, 여자가 시댁으로 가는 것을 뜻한다. ‘의’가 시집가듯이 죄인에게 오는 것이다. 동시에 죄인의 죄(罪)는 주님께 옮겨간다. 의와 죄가 서로 교체한다. 사람이 의로운 것은 없다. 의롭지 못함을 인정하고, 죄인임을 자각하고, 구원주이신 주님을 의지하면, 주님의 의가 죄인에게 오고, 우리의 죄는 주님께 넘겨진다. 죄와 의가 동시에 교체한다.
율법은 채무탕감을 원리금 상환처럼 하는 것이다. 매월, 매주, 금식과 십일조를 하면서 죄의 값을 계속 갚아간다. 그런데, 죄의 채무는 사람마다 100억원이 넘고, 원리금 상환금액은 매월 100만원밖에 안되니 평생 갚아도 빚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전혀 다른 방법으로 백성의 모든 죄를 탕감시킨 것이다. 주님께서 모든 백성의 죄를 책임지고서 십자가에서 담당하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을 믿는 자마다 죄가 소멸되고, 대신에 주님의 의가 주어진다.
내가 지금까지 알고있던 이신칭의가 이것인데, 오늘은 이신칭의(以信稱義)의 새로운 해석을 배웠다. 주님의 의로움이 우리에게 주어졌으니, 이제는 우리의 의로움을 다른 사람에게 주라는 것이다. 여기서 의(義)는 이신칭의로서 의(義)이며, 십자가의 전가(轉嫁)이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각자 십자가를 짊어지고 따르라”고 했다. 여기서 십자가는 자신의 책임도 되지만, 주님께서 담당하신 십자가는 자신의 죄값이 아니라 제자와 백성과 이방의 죄값이었다. 그렇게 제자들에게도 다른 사람의 죄값을 담당하라고 한 것이다. 우리가 이신칭의(以信稱義)로서 의로운 옷을 입고, 안식의 집에 거하고, 생명의 물을 마시고, 영혼의 양식을 먹게 되었다. 우리에게 의식주를 주시면서 주님은 의식주를 잃었다. 우리도 주님처럼 우리의 것을 이신칭의(以信稱義)로서 줄 수 있는가?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는 전가(轉嫁)로서 죄를 넘겼다. 선악나무의 열매를 먹은 자들은 죄를 떠넘긴다. 반면, 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우리는 의(義)를 줄 수 있어야한다. 그것이 기도(祈禱)다. 주님은 우리에게 원수와 대적자를 위해서 축복기도를 하라고 했다. 이것이 우리에게 허락한 이신칭의(以信稱義) 기도법이다. 저주하는 자를 위해서 축복기도를 하는 것, 이것이 골고다 길을 걸어가신 주님의 의로우심이다. 죄를 넘긴 아담과 하와 가정에서 장남 가인은 동생 아벨의 의로움을 뺏기 위해서 존속살인을 했다. 이것이 선악과의 결과다. 반면, 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제자들은 유대교와 로마제국을 위해서 순교의 길을 걸어갔다.
원수가 있는가? 적과의 동침인가? 원수의 멸망과 심판을 촉구하는 저주의 기도를 하지 말라!! 주님은 적을 위해 축복기도를 하고, 이신칭의(以信稱義)로서 그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회개하길 원하신다. 마태복음 18장의 만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를 기억해야한다. 1달란트는 3억이니, 1만달란트는 3조원이다. 3조원의 빚을 탕감받았다. 100데나리온은 100*하루일당이므로, 1천만원에 해당한다. 이신칭의(以信稱義)로서 우리는 아담의 원죄와 자범죄와 연대죄와 유전죄까지 모두 십자가를 통해서 면책받았다.
주님은 대략 3조원의 죄값을 탕감받았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형제의 죄를 용서하는데 인색하다. 형제의 죄는 돈으로 환산해서 1천만원 정도다. 1천만원의 빚을 끝까지 받으려고 한 그 사람은 결국 임금에게 알려져서 3조원의 채무가 다시 발생했다. 그래서 감옥에 들어갔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악행을 용서하지 않고, 끝까지 율법의 심판을 촉구했다. 그래서 자신들의 죄값도 청산되지 못한 것이다.
이신칭의로서 의로움을 얻은 우리는 우리에게 빚진 형제의 허물을 용서해야한다. 결국 이신칭의(以信稱義)는 각자의 이신칭의(以信稱義)를 전제하고 있음을 알아야한다. 십자가의 전가(轉嫁)는 값없는 선물이지만, 각자의 십자가의 전가(轉嫁)를 준행하라는 복음의 명령이 포함된 선물이다. 십자가의 전가속에 십자가가 들어있는 것이다. 각자 십자가를 짊어짐으로, 주님의 십자가는 의로움으로 전가된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율법의 마침표요, 그 완성이다.
[마태복음 18장]
21.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23.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26.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32.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34.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35.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