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복음서를 깊게 탐독한다. 1일은 1장, 2일은 2장, 3일은 3장, 4일은 4장으로 읽으니, 헤깔리지 않는다. 성경의 깊이가 심해와 같음을 배움으로 인지하고서, 하루에 1장을 읽는 것이 얼마나 많은 양인지 진실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하루에 1장만 읽는데 모든 시간을 투자한다. 복음서는 모두 30장 미만이므로, 날짜로 설정하면 부담도 없다. 어제는 2월 3일, 마태복음 3장을 10번 정도 읽었다. 참 좋았다.
마태복음에서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출현’을 알려주는 선지자다. 구약성경에서 사무엘의 역할이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서 왕으로 삼았다. 통일왕국 초대왕 사울이 있었으니, 그는 세상의 왕을 상징한다. 다윗은 평화와 사랑의 왕으로 종교적 왕을 상징한다. 그래서, 동방박사가 3가지 예물로서 아기 예수를 경배했고, 30세에는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로 기름을 부은 것이다.
‘낙타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라는 표현은 열왕기하 1:8에 묘사된 엘리야와 복장이 같다. 인물과 배경이 다르지만 복장이 같다. 마태는 세례요한을 시대적 엘리야로서 묘사한 것이다. 세례요한이 시대적 엘리야라면, 예수님은 시대적 엘리사가 된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실제로 요단강에서 겉옷을 벗고서 물이 갈라지는 표적을 일으켰다. 사명의 교체가 그때 있었다. 말라기 선지자가 “엘리야가 먼저 오리라”고 한 것은 “엘리사가 다음에 온다”는 의미도 들어있다. 세례요한과 예수님은 엘리야와 엘리사처럼 그 시대를 감당했다.
구약성경에서 엘리야와 까마귀밥을 배울 때마다 ‘바알과 아세라 우상숭배자’라고 욕했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 시대적 엘리야로 살았던 세례요한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뱀새끼들아!!”라고 욕을 했다. ‘독사의 자식’은 곧 ‘뱀의 후손’이다. 이는 창세기 옛뱀을 말한다. 종교의 엘리트 집단이 바로 뱀의 후손이었다. “원수가 집안에 있다”는 의미는 가정파괴를 말한 것이 아니다. 성전의 내적청소를 말한다. 창세기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뱀의 첫 번째 자식이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따르면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해서 따르면, 뱀의 후손이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뱀의 후손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엔 ‘바알과 아세라’와 똑같았다.
교회가 불교를 욕할 것 없다. 기복신앙을 하고, 세상정치 이야기만 한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교회가 곧 불교다. 절은 곧 ‘절한다’에서 나왔다. 절은 ‘예배’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성도가 ‘세상적 복’을 구걸하고 계급화와 권력화로 변질되면 교회가 절간과 다를 바 없다. 십자가를 불상처럼 만드는 것은 성도들이다. 엘리야가 그 시대 하나님을 믿는 종교 지도부를 향해서 ‘뱀의 새끼들아’라고 지칭했으니, 그것은 ‘바알과 아세라’로 지목한 것이며, ‘우상숭배자’로 말한 것이다. 오히려 점성술자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경배했고, 창녀와 세리들이 주님의 말씀을 영접했다.
“복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받는 것이다”라고 정의한다. 피상적 정의다. 복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축복은 그렇게 오지 않는다. 성경은 “축복이 사람의 바라는 것으로 오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하늘에서 원자폭탄이 떨어지듯이,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 그리스도이다. 마리아에게 청천벽력과 같았으니, “말씀대로 이뤄지이다”라고 고백한 그 믿음은 죽음과 동일했다. 약혼한 남편 요셉은 율법으로 정죄하면 마리아는 돌로 쳐 죽임을 당했다. 요셉에게 마리아의 임신 소식은 청천벽력이었다. 동방박사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있는가”라는 정보를 헤롯대왕의 궁궐에 전달했을 때, 왕에게 새로운 왕의 출현을 예고했으니 ‘청천벽력’이었다. 사울왕 시대에 다윗의 출현과 같았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은 “이 잔이 나를 피하게 하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시고, 하나님께 철저히 버림을 당하셨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셨다. 구원주로서 이 땅에 오신 주님은 구원을 받지 못했다.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에 있는가? 축복은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오지 않는다. 일본 식민지에 2개의 핵폭탄이 떨어지자, 일본천황은 무조건 항복했다. 2천년전 하나님은 이 땅에 ‘세례요한과 예수님’을 보내서 핵폭탄을 투여한 것이다. 그리고 마귀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낸 것이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장면은 많은 뜻을 내포한다. 백성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서 세례를 받은 것이다.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은 대신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 아담은 하와에게 죄를 넘기고, 하와는 뱀에게 죄를 넘겼다. 아담은 예수님처럼 하와의 죄를 대신 자복해서 하나님께 메달렸어야 했다. 하와도 뱀의 유혹을 탓하지 말고, 자신의 탐욕을 회개했어야했다. 가인도 아벨을 향해 분노할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처럼 가인도 아벨을 대신해서 자복하고, ‘자신의 분노’를 다스렸어야 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 백성의 죄를 대신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가인도 자신의 죄와 부모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아벨의 재단에서 제사를 드렸어야 했다.
엘리야 시대에는 3년의 가뭄이 있었다. 엘리야가 850명 거짓 선지자를 죽이자,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출현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내려오심이다.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고서 올라오시자, 하늘이 열리면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다”라고 하시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서 임했다고 했다. 말씀의 단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고서 바로 광야에서 40일 금식기도를 하고서 주님은 마귀를 초전박살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듯, 옛뱀과 싸워서 3KO로 완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