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많은 종교가 ‘예수님과 세례요한의 사명관계’를 이상케 변질시켰다. T종교에서 시작된 이론인데, 성경을 통해서 나의 견해를 적어본다. 한때는 T종교의 설명을 100% 신뢰했지만, 지금은 신뢰하지 않는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모시고 섬겼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서 실패했다고 말한다. 세례요한이 순교당해서,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했다고도 말한다. 이들은 또한 예수님이 죽어서 예루살렘이 멸망했다는 설명도 추가한다.
베드로와 요한이 세례요한의 제자였다는 것은 아는가? 안드레, 베드로, 사도 요한은 세례요한의 제자였고, 세례요한의 증거를 믿고서 예수님을 스승으로 따랐다. 그 시대 깊은 내막을 알지 못하면서, 단편적인 성경지식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를 섣불리 판단하다간, 낭패를 당할 수 있다. 기독교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알려면, 정확히 알아야한다. 요한복음에 자세히 보면, 세례요한의 제자로 안드레와 요한이 나온다.
T종교의 논리대로, J종교와 S종교가 예수님과 세례요한의 사명관계를 그렇게 본다면, 예수님이 왜 십자가 구원의 길을 선택했는지 정확히 인지해야한다. 예수님은 구약의 모든 율법과 예언을 완성하시러 오셨다. 율법의 마침표요, 예언의 완성자로서 주님이 오셨다. “모든 예언이 세례요한까지”라고 한 것은 세례요한이 마지막 선지자라는 의미다. 세례요한이 예언한 것까지 예수님이 이루시겠다고 한 것이다. 말라기가 마지막 선지자로 모두 알고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렇게 성경을 잘못 알고 있다. 마지막 선지자는 세례요한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예언을 이뤄야할 책임이 있었다. 세례요한의 예언은 엘리야처럼 그 시대를 향해서 ‘심판과 멸망’을 예언했다. 예수님은 그 예언을 과연 어떻게 이루셨는가?
세례요한이 예수님께 “오실 그 이가 당신입니까?”라고 한 것은 심판의 예언이 성취되지 않음을 물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헤롯왕과 유대교와 로마제국에 떨어져야하는데, 감옥에서 예수님의 소식을 들어보니, 한가하게 잔치를 하고 있으니 세례요한은 헤깔렸던 것이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순교당했다. 그렇다면, 세례요한의 예언은 언제 이뤄졌는가? 그것을 대부분 모르고 있다. 십자가에서 세례요한의 예언이 성취되었다. 그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가 예수님께 임했던 것이다. 그것이 그 시대를 향한 예수님의 지극한 사랑이셨다. 만약, 예수님이 십자가 사건을 피했다면 예언이 어찌 이루겠는가?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구원받지 못할 십자가 길을 걸어가신 주님의 심정이다. 이것을 알고서 ‘십자가의 도(道)’를 말해야한다.
J종교와 S종교는 그들이 말하는 세례요한의 예언을 무엇으로 이루겠는가? 그런데, 놀랍게도 모든 종교들은 앞의 종교를 무조건 ‘세례요한이다’라고만 할 뿐, 세례요한의 예언을 이룰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道)에서 벗어난 ‘베드로의 배신종교’라는 지탄을 받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자신만이 ‘그리스도의 사명’이라고 하고, 앞에 나타난 종교는 “세례요한이다”라고 말하고, 다른 설명이 없다. 전역사와 관계가 단절되어도 후역사는 진행되는 황당한 관계다. 결국, 그들은 서로에게 아무 관계가 없는 종교역사일 뿐이다.
세례요한이 엘리야면, 예수님은 엘리사다. 말라기가 예언한 ‘엘리야의 출현’에는 엘리사의 사명이 함께 들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엘리사처럼 제자사역을 통해서 그 시대에 ‘복음의 그루터기’를 남겼던 것이다. 엘리야는 엘리야의 사명을 하고, 엘리사는 엘리사의 사명을 하는 것이다. 엘리야가 엘리사를 돕지 않아서, 엘리사가 낭패를 당한 것이 절대로 아니다. 세례요한의 순교는 그 시대앞에 거룩한 죽음이었고, 주님은 십자가로서 그 시대와 미래에 구원의 생명길을 열어주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