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하루에 1장을 읽는 것은 마음에 여유도 있고, 부담감도 없으면서 깊게 되새김질할 수 있다. 나는 48세, 33년 신앙생활을 했는데 복음서를 깊게 읽은 것이 1번도 없다니, 너무 충격적 사실앞에 나를 반성하면서 하루 1장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해보니까, 참 좋다. 사람이 뷔페식당을 가더라도 그날 먹을 양만큼 먹을 뿐이다. 영의 양식도 그러함을 인지한다.
오늘은 2월 6일, 마태복음 6장이다. 마태복음 5장은 오복(五福)과 연결해서 팔복장이 나오면서 팔복염광(八福鹽光)의 사자성어, 율법의 완성, 율법조항의 시행령 제정이 나온다. 이단들이나 몇몇 기독교는 예수님이 율법을 폐했다고 생각하지만, 율법의 헌법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시행령이 강화된 것이다. 율법의 헌법이 폐했다면, 왕조가 변경되었으면, 여호와 하나님도 변경되었을 것이다. 율법의 헌법에서 영원한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다. 그래서 기독교도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께 지상의 통치권을 위임받으셨다.
마태복음 6장은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연상시킨다. 믿는 제자들에게 ‘간첩처럼’ 살라고 엄명하신다. 간첩은 결코 홍보하지 않고 나팔불지 않고 모든 사건을 몰래 처리한다. 그리고 밤에 와서 몰래 본국에 정보를 보낸다. 작전명령도 암호로 한다. 6장은 그것을 말하고 있다. 본국(本國)은 천국이며, 이 땅은 세상나라다. ▲은밀한 구제활동 ▲은밀한 기도활동 ▲은밀한 금식 ▲은밀한 보물창고 등에 대해 나온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백합화’와 ‘솔로몬 왕’에 비유했다. 들풀의 영화로움도 솔로몬 왕의 의복보다 낫다고 설명하시며,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들이랴!!!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믿는 성도를 위해 만들어주시는 의복은 계시록에 자세히 나와있다. 들풀의 백합화와는 비교할 수 없다. 그러한 모든 재료와 재질은 은밀하게 행하는 선한행실과 의로움을 통해서 가능하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했다. 그렇다면 사람을 위해서 했으니 사람에게 상급을 받는다.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사람에게 보이려고’를 금지했다.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이 보시기에’를 중심으로 살아야한다. 하나님은 은밀하게 보시므로, 그러한 하나님께 은밀하게 대화하고, 상의하고, 낮은 자세로 기도하면서 자신과 이웃과 교회와 민족과 세계를 위해서 슬픈 베옷을 입어야한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라고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했다. ‘자신도 모르게’ 하라는 의미다. 구제를 하고서 아애 잊어야한다. 자신이 했다는 생각 자체를 삭제해야한다. 누구가를 도왔다면, 차라리 빌린 것을 갚았다고 생각해야한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했다면, 차라리 기도받은 품앗이를 했다고 생각해야한다. 받기위한 구제활동은 해서는 안된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제자와 유대교와 로마제국과 미래인을 구원하기 위해 생명구원의 사역을 펼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구원활동을 예수님께 상급을 내리셨다. 모든 구원활동과 구제활동은 하나님의 상급을 받아야 아름다운 것이다.
마태복음 6장 22절에 그 유명한 ‘네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는 말씀이 나온다. 우리의 보물창고는 어디에 있는가? 2년전 대한민국 시민들의 새로운 보물창고로 ‘비트코인’이 등장했다. 그때 큰 돈을 번 사람도 있고, 큰 돈을 잃은 사람도 많다. 주식도, 부동산도, 황금도, 건물도 영원한 보물창고가 될 수 없다. 영원한 보물창고는 ‘보물이 있는 마음속에’ 위치한다. 각자 마음속에 하나님을 진실로 모시고, 자신을 보물창고로 만들어야한다.
하나님이 계시면 그곳이 성전이다. 하나님께 무엇이 보물일까? 하나님이 보시는 의로움은 무엇인가? ‘그 나라와 그 의’라고 분명히 되어있다. 원수를 축복하고, 남을 위해 진실로 헌신하고, 자신의 의로운 옷을 죄인에게 벗어주고, 죄인을 위해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그러한 의로움이 하나님께는 보물이다. 그러한 의로움이 있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머물게 된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으니,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보물이 있는 각 인생에게 머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