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주의(靈知主義)는 영적인 지혜를 중심하는 신앙공동체를 말하며, 유대교에서 율법중심 공동체와 함께 카발라 공동체로서 존재했다. 에세네파도 영지주의에 속한다. 예수님도 에세네파에 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드레와 베드로와 요한도 에세네파였다. 세상과 결별, 탐욕과 단절을 통해 마음속에서 마귀를 없앤다는 것, 그것은 귀신을 몰아내는 엑소시즘과 직결된다. 마태복음 4장에서도 예수님은 마귀와 대전쟁을 선포하고, 악령의 우두머리를 몰아냈다. 마태복음 8장에서는 공동묘지로 쳐들어가서 돼지떼를 제사지내면서 군대귀신을 척결했다.
영지주의를 직접 접했던 사도 요한도 영지주의 못지않게 영적인 경험을 한다. 베드로가 환상을 보고, 변화산상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보듯이, 밧모섬에서 엄청난 환상을 보면서 요한계시록을 남겼다. 영적인 세계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러한 사도 요한조차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이름”을 자주 거론한다. ‘영생은 예수의 이름을 통해 온다’는 것이 사도 요한의 최종 결론이다.
나는 지식을 추구하는 자로서 신령한 환상이나 환청을 알지 못한다. 나는 영지주의(靈知主義)가 아니고, 진지주의(眞知主義)다. 진리의 지식을 추구하는 자로서, 성경을 탐닉하고, 말씀속에서 신령한 세계를 발견하고, 세상뉴스를 통해서 하나님의 묵시를 듣는다. 빌라도의 학살뉴스와 실로암 망대 붕괴사고에서 ‘영적 회개의 묵시’를 들으신 예수님의 반응을 수용한다.
언젠가 교회에서 목사님이 ‘영지주의와 요한복음’에 대해 깊은 강해설교를 해주셨다. 그 설교를 듣고, 엠마오로 낙향하던 두 제자가 예수님의 떡을 먹고서 눈이 떠지면서 예수님을 알아보듯이, 성경속에서 손짓하는 주님을 보았다. 오~~ 아멘!! ‘더 밤’(THE BOMB)이었다.
오늘 교보문고에 갔다. 영지주의 복음서를 서술한 책을 1권 샀다. 마리아 복음서를 찬찬히 읽어보았고, 빌립 복음서와 야고보 복음서와 도마 복음서를 읽어보았다. ‘부활의 첫 번째 증인 마리아의 존재’가 과연 보통이 아니었음을 확인하였다. 사도 요한은 3명의 ‘마리아’를 거론한다.
1) 어머니 마리아 2) 사마리아 여인 3) 베다니 마리아(=막달라 마리아)
어머니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는 십자가 사건을 끝까지 지켜본 인물이며,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 부활의 최초 목격자였다. ‘최초’에는 ‘표상’의 권위가 부여되고, ‘1등’의 수식어가 따르며, 영광의 면류관이 수여된다. 모든 복음서에 마리아의 향유옥합 사건이 기록되었다. 단지, 누가복음만 막달라 마리아로 기록되었을 뿐, 나머지 복음서는 베다니 마리아의 아름다운 향유옥합이 등장한다. 베다니 마리아가 곧 막달라 마리아다. 요한복음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향유옥합을 부은 마리아’를 의미한다.
유대인 전승에는 베다니 마리아가 상당히 부유해서 상속재산이 많았고, 막달라 지방에 가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일곱 귀신에 들릴 정도로 미신에 빠졌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황후의 품격’ 드라마로 비유하면, 어머니 마리아는 태후, 막달라 마리아는 황후, 사도 요한은 비서, 베드로는 영의정이다. 예수님은 왕으로서 통치를 하시다가, 십자가에서 암살을 당했고, 3일만에 살아나셨다가 40일 후에 사라지셨다. ‘살아나심과 사라지심’ 사이에 제자들은 혼란에 빠진 것이다. 그리고, ‘황후의 품격’ 드라마처럼 미묘한 권력암투가 신앙공동체에서 발생했다.
어머니 마리아는 성령으로 예수님을 낳은 자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믿음으로 예수님을 왕으로 삼은 자이다.
베다니 마리아는 사랑으로 예수님을 품은 자이다. 향유옥합은 결혼할 남편에게 사용되는 예물이다.
일곱 귀신을 쫓아내고 예수님을 따른 베다니 마리아는 영적 신령함이 탁월했을 것이다. 마리아 복음서를 읽어보면, 불교와 도교의 신비한 영적 체험이 거론되고, ‘혼체와 영체’가 구분되어서 귀신을 축출하기 위한 영계의 비밀이 거론된다. 막달라 마리아가 ‘사라진 예수님’의 뒤를 이어서 어떠한 신앙생활을 했을지, 위험한 상상을 해본다. 진리를 중심하지 않으면, 일곱귀신보다 무서운 세력이 덮칠 수도 있다. 최초 부활의 목격자일지라도, 예외는 없다. 요한복음은 그것을 엄중히 경계하고 있다.
1. 예수를 낳은 성령과 예수가 보낸 성령은 같을까?
2. 예수가 남긴 말씀과 부활의 예수가 전한 말씀은 같을까?
예수를 낳은 성령은 성모 마리아의 성령을 말한다. 즉, 유대교의 성령을 뜻한다. 마리아가 예수를 낳듯, 유대교가 예수를 낳았다. 유대교의 성령은 하나님을 통해서 왔다. 반면, 예수님이 보내시는 성령은 ‘진리의 성령’으로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성령이다. 완전히 구별된다.
예수가 남긴 말씀과 부활의 예수가 전한 말씀은 완전히 다르다. 제자 공동체는 여기서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또한, 예수가 남긴 말씀도 각자 모두 달랐다. 공자의 어록도 제자마다 달랐듯이 그러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영매처럼 부활의 예수를 대언하면서 성령의 말씀을 전했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인격의 예수와 전혀 다른 말씀이 나올 수도 있다. 마리아 복음서를 보면, 사도 요한이 우려한 문제점이 충분히 엿보인다.
사도 요한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과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예수님을 증거한다. 특별히 다른 관점 2가지는 니고데모와 도마다. 니고데모는 ‘성령의 거듭남’을 알지 못하였는데, 예수님이 죽고나서 그 시체를 향유 100리라를 사용해서 왕의 시신으로 염을 하였다. 막달라 마리아의 향유옥합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금액이다. 산헤드린 의원으로서 유대교 축출을 각오하고 결심한 사건이었다. 그 행위로서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진정한 부활의 증인임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도마는 예수님의 몸에 직접 손을 넣어서 만진 다음에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입니다”라고 고백한다.
요한은 묻는다.
주님을 보았는가, 보았으면 무엇을 보았는가?
말씀을 들었는가, 들었으면 무엇을 들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