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삶이 생명적이다. 옛날에는 교회가는 것이 노예처럼 싫었는데, 요즘은 교회가는 것이 즐겁다. 몸이 다소 피곤하지만, 아침 7시에 일어나 몸과 마음 챙겨서 집을 나섰다. 지난주는 요한복음의 닫힌 공동체에 대해 깊은 말씀을 들었다. 오늘은 에스더서를 통해 열린 권력에 대해 배웠다. 닫힘과 열림이 밀물과 썰물처럼 반복하니, 내 지성에 영성의 새벽별이 떠올랐다. 아멘!!
“죽으면 죽으리라”는 단순한 텍스트의 외침에서, 성경의 맥락과 역사적 배경을 통해 재해석된 에스더를 들으면서, 나는 마음이 숙연해졌다. 절대권력을 향한 1인 시위의 모르드개가 곧 엘리야였고, 모세였고, 예수였다. 권력앞에 굴종할 것인가? 권력앞에 저항할 것인가? 하나님은 내게 말씀으로 물었다.
나는 30년 있던 곳에서 그곳을 증거하는 책을 20권 넘게 썼고, 그곳을 나와서 6권의 책을 썼다. 그곳을 증거하는 글들은 그곳 교단에서 내리라고 해서 내렸다. 그때 나의 저항정신은 짓밟혔고, 어린양처럼 순둥이로 살기로 굴종했다. 그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그곳을 좋게 쓴 글이나 나쁘게 쓴 칼럼이나, 하나의 비판적 의견이며, 저항정신의 외침이다. 이제, 저항의 칼날은 나로부터 출발하여 신앙개혁을 하고, 그동안 썼던 모든 칼럼을 열어야겠다. 나의 견해는 단지 참고할 관점에 불과하다.
늦은 나이에 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복귀했다. 성경속으로 나의 여행은 외국을 다니는 것보다 행복하다. 오늘도 에스더서를 통해 신약과 구약을 관통하는 복음의 진리를 듣고, 십자가의 저항정신과 “구원의 도”에 마음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