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목사님이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믿지 않으면 이미 심판이 일어났다고 말하며, 요한복음 곳곳에서 살아서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말씀했다. 이것이 현재적 심판이고,현실적 부활이다”라고 설명했다. 현재적 심판은 요한복음이고, 미래적 심판은 공관복음이다. 마태복음 24장은 심판주가 따로 존재하고, 그가 재림주이며, 구름타고 오시는 예수님이다. “구름”을 비유로 풀면서 수십명, 수백명의 적그리스도가 출현했다. 진리의 성령은 요한복음에서 예언했고, 재림주는 공관복음이 예언했다. 그렇다면, 재림주가 진리의 성령인가?
그러나,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은 “말세때 주님이 임한다”는 것을 말한다. 마태복음은 세상적 말세때 주님이 임하고, 요한복음은 개인적 말세때 주님이 임한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언제 주님을 맞았는가? 가장 의지했던 오빠 나사로를 잃었을 때이다. 제자들에게 언제 주님이 임했는가? 가장 의지했던 스승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이다. 언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을 주셨는가? 갈대아 우르를 떠났을 때이다 언제 가나안의 가치를 알게 하셨는가? 친족 롯이 떠났을 때이다. 언제 노아가 임했는가? 홍수가 내려와 모든 사업이 망했을 때이다. 사업이 망해야 그때 주님이 임한다. 주님은 항상 계신다. 그런데 사람은 사업이 망해야 그때 주님이 보인다.
마태복음에서 제자들이 화려한 건물을 보이며 부러워했다. 그 건물이 AD70에 무너지니 그제서야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보였다. 40년이 지나고서 예수님의 말씀이 보인 것이다. 말세가 와야 그때 인자가 보인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지금도 성경속에 계신다. 교회에도 계시고, 드라마에도 있고, 이단들의 설교속에도 있다.
예수님을 죽이기로 논의한 재사장의 음모속에 주님이 계셨다고 요한복음은 증언한다. 요셉때는 하나님이 바로왕에게 14년 경제정책 청사진을 계시하셨다. 요시야때는 이집트 바로왕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왔다. 예레미아는 느브갓네살 왕이 하나님의 심판자라고 예언했고, 예수님도 로마를 하나님의 심판자라고 예언했다.
모든 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말씀이 있다. 단지, 소경이 되어 못 볼 뿐이다. 못보는 이유는 “부유한 배부름”으로 가려졌기때문이다. 말세를 당하면, 그때 주님이 보인다. 멸망해야 생명을 얻는다. 그래서 주님은 말세가 갑자기 오기전에,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서 주님의 가치를 깨닫고 하나님을 모시고 살라고 하셨다. 스스로 날마다 말세를 맞아야한다. 바울의 고백처럼, 날마다 죽어야 날마다 부활한다. 자신이 죽어야, 그때 주님이 보이며 자신에게 임한다. 하만이 유대인을 말살하겠다고 안했으면, 모르드개는 수산궁을 왔다갔다하는 권력에 빌붙은 개처럼 살았을 것이다. 신의 섭리는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