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월 26일 마태복음 26장을 읽었다. 북미회담을 앞두고서 초긴장 상태에 돌입한 세상과 다르게 나는 마지막 만찬속에 있다. 파는 자가 가룟 유다인 것을 알면서도, 제자들은 어떤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예수님도 속으로 끙끙 앓고, “기도 부탁한다”는 말만 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다. “나를 팔리라” “나를 부인하리라” “도망가리라”는 예수님의 예언은 왜 그렇게 잘 실현되고, 실천하는지….. “깨어 기도하라”고 명령한 말씀은 “졸며 자는 제자들”로 표현된다. 왜 이러한 명령은 실현되지 않는지….. “자고 쉬라”고 하니, 이 또한 제자들은 정말로 잘 실천한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고 하니, 왜 이 말씀은 실현되지 않을까? 십자가 길을 함께 간다는 것,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고난의 길, 알 수 없는 풍랑의 길을 가게 될 때, 분명 주님께서 함께 하시리라. 하루종일 마태복음 26장 읽으면서 먹먹할 것 같다. 어제 ‘왕이 된 남자’에서도 하선이 예수님처럼 곧 붙잡힐 위기에 처하던데….. 인조반정이 과연 옳았을까? 임진왜란보다 더 참혹한 국가의 패망과 굴욕이 일어나는 게으르고 두려운 왕의 등장을 예고하니, 꼭 하만이 나올 것만 같은 두려운 공포가 엄습한다.
“함께 가자”는 그 말씀은 역설적으로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우편 강도에게 이뤄진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송창식 가수의 – 푸르른 날에 – 내가 죽고 네가 산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