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목사님이 묵직한 단어를 내게 던졌다. 부드러운 음성으로 내게 물으셨으나, 나는 화살의 공격을 받은 과녁판처럼 휘청거렸다. 양립할 수 없는 ‘평화와 전쟁’이 어찌 가능한가? 30년간 ‘평화의 지상천국’를 간절히 염원하고, 이뤄지지 않았으나 이뤄졌다고 믿었으니….. 평화는 어떻게 얻는 것인가?
돌이켜보면, 나는 20년전에 담배와 전쟁했다. 해병대에서 사귄 2명의 악동이 있었으니, 술과 담배였다. 내가 제대하자 이들이 나를 따랐다. 그리고, 나와 함께 국민대에 복학했다. 술을 끊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친구를 버릴 수 없었다. 담배를 끊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고독을 견딜 수 없었다. 술은 경제적 부담이 많아서, 자연히 멀어졌는데, 담배는 당시 저렴해서 끊어지지 않았다. 나는 ‘담배끊기’를 기도했다. 같은 교회 선배들은 담배피우는 나 때문에 늘상 곤혹스러워했고, 나도 그런 내가 당혹스러웠다.
어느날, 내게 어떤 분이 “담배 피우는 것이 뭐가 문제예요? 끊는다고 해서, 근본문제가 해결되나요? 담배를 피우게 한,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죄의 뿌리를 끊으세요”라고 나를 어루만졌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비로소 담배와 전쟁을 할 수 있었다. 내 자신을 사랑하고, 내 자신을 발견하니, 담배는 서서히 멀어졌다. 그리고, 어느날 충고해주신 분이 내게 “담배를 피울 거면, 손목을 끊어요!!”라고 강하게 권면했다. 정말로, 당혹스런 권면이었다. 그때 담배를 완벽히 끊었다. ‘평화와 전쟁’이었다.
미스터 션사인 1회에서 유진 초이가 대한민국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상냥한 말과 커다란 채찍”을 가지고 가라고 했다. ‘좋은 게 좋다’는 화술은 ‘좋은 게 안좋게’ 변질될 위험이 높다. 항상 좋은 게 좋은 것은 아니다. 좋은 것이 좋다고 모르드개가 술에 술탄 듯, 물에 물탄 듯 연산군에 굴복한 신하들처럼 행했다면, 위대한 성경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까?
모르드개의 1인 시위는 결국 에스더의 잠을 깨웠다. 궁궐의 안락함에 빠져, 왕의 침실을 기다리던 그녀를 벼랑끝까지 밀어버린 ‘모르드개의 사생결단’은 왕후 에스더를 ‘민족의 구원주’로 변화시켰다.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연합은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위해 기어이 자신을 죽음의 벼랑으로 밀어버린 그리스도의 결단으로 승화되었다.
성경적으로 구원주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다. 초림주도 예수님, 재림주도 예수님이다. 불변의 진리다. 이제, 그 예수님과 인격적 교제를 할 시간이다. 나의 구원주가 예수 그리스도가 되기까지, 나는 끝없는 전쟁을 해야 할 것이다. 구원은 공짜가 없다. 주님의 이신칭의(以信稱義)로 구원을 받지만, 그 과정은 끝없는 전쟁이다. 쉽게 얻을 수 있었다면, 예수님 시대에 모두 얻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니, 구원은 쉽게 얻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