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초콜릿에 푹 빠져서, 초콜릿 책을 탐닉한 적이 있었다. ‘신의 열매’(제사음식)로 불리는 초콜릿은 커피와 함께 유럽에 정착한 나무들이다. 초콜릿 나무(카카오)가 유럽에 처음 정착했을 때, 열매가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물음표를 제기했다. 원주민들보다 더 정성을 다하고, 원주민들보다 거름을 더 많이 하고, 원주민들보다 더 정결하게 청소하면서, 신을 모시듯 나무관리를 했는데, 열매가 없었다. 벌레와 해충까지 완벽히 잡아줬는데, 열매가 없었다. 그들은 나중에 알았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벌레가 카카오 열매를 열게 하는 중매자인 것을…..
나의 아버지는 겨울에 하우스를 했다. 옥수수를 겨울에 재배하면,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큰 꿈을 품고서, 논농사 대신에 하우스를 택했다. 그때 옥수수를 위해 모든 정성을 다했는데, 어느날 아버지가 혼비백산이 되어서 집에 돌아왔다. 나방들이 몰려와서, 옥수수밭을 갉아먹게 됐다고, 방법을 찾으려고 사방팔방 돌아다녔다. 다행히 옥수수를 해치지 않고, 좋은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하우스는 평온해졌다. 그해, 옥수수는 옥수수로 끝났다. 열매가 거의 없었다. 나중에, 아버지는 내게 말해줬다.
“창훈아!! 그 나방떼가 열매를 맺게 해주는 중매자였어!!”
이듬해부터 아버지는 난방비가 들더라도, 하우스 비닐을 열고서 나방들을 초청했다. 방독면을 쓰듯, 나방떼의 날개짓에 마스크를 쓰고서 전쟁의 고역을 치르고서, 옥수수는 풍년을 이뤘다. 전쟁없이 평화는 없다.
내가 떠난 옛날 교회는 ‘벌레없는 초콜렛 나무’를 바란다. 지나친 정결주의다. 어제, 처음, 고린도전서 7장의 의미를 깊게 새겼다. 혼합가정(믿는자+믿지 않는 자)에 대한 바울의 권면은 내 마음에 깊은 감동을 준다. 옛날 교회에서는 그들을 ‘장년부’로 분류했다. 나는 축복가정이었다. 축복가정은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다”는 논리로서, “한번 축복가정은 영원한 축복가정”의 금수저가 있다. 그게 비진리다. 성경적이지 못하다. 어찌 구원이 결혼으로 말미암는가?
호세아는 결혼파탄을 통해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깨닫고, 그때 하나님은 “재결합”을 요청했다. 이후 성경은 재결합이 됐는지, 아닌지, 나와있지는 않다. 고멜의 자유의지도 있으니 그렇다. 당시 호세아는 재결합을 위해서, 포주(抱主)에게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속전을 치렀다. 나방떼를 맞이하듯, 호세아가 행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