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에서 요셉과 그 형제들이 다시 만나는 장면은 심금을 울린다. 읽고 또 읽어도 애잔하다. 옛날에는 창세기를 읽을 때, “양식=말씀”의 프레임을 가지고 읽었다면, 요즘은 “형제의 우애”와 “참회와 용서”의 관계로서 읽는다.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인데, 너무 종교적으로만 해석하다보면, 창세기의 본질을 잘못 해석할 수도 있다. 배가 고프니까, 이집트로 간 것이다. 지극히 당연하다. 어느날 갑자기 노예로 팔렸지만, 죽을 각오로 하나님을 부르면서 요셉은 살아남은 것이다. 감옥생활하면서, 반성도 많이 했을 것이다. 요셉이 노예로 팔리면서, 요셉을 팔았던 형제들도 ‘죄책감의 감옥’에 갇혀서, 점점점 경제적 기근에 시달리면서, 유다는 자식 둘을 잃고, 며느리와 관계를 맺는 가정파탄에 이른다. 창세기 드라마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요셉의 성공’보다 ‘참회하는 유다’에 있다는 말씀에 깊은 공감을 한다. 게다가,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이 살아있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야곱은 얼마나 놀랍고, 놀라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