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4월 3일 부산 해운대(海雲臺) 운봉산(雲峯山)의 검붉은 산불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실검뉴스를 접한다. 불타는 태양 ‘버닝 썬 클럽’ 사태는 산불처럼 온 세상을 휩쓸었고, 세상속에서 침묵의 미세한 성령의 소리를 듣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까페에서 마가복음 3장을 읽었다.
마가복음 3장은 ▲안식일 치료 ▲귀신 축출 ▲12사도 임명 ▲분쟁하는 나라(귀신왕) ▲성령 모독죄 ▲신앙의 가족에 대해 나온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가? 그들에게는 그것이 관건이었다. 그들의 법으로 ‘범죄사실’로서 법적인 구성요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VDO가 있었다면, 그들은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서 촬영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완악함을 아시고, 분노하시면서, 보란 듯이 병자를 고치시면서, 그들을 향해 맹공격을 퍼부었다. 결코 물러서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이런 성격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이 사건으로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의 살해 음모’가 시작됐다고 마가는 해석한다.
12사도를 예수님이 임명했다. 마가는 12명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시몬 베드로를 맨 앞에, 가룟유다는 맨 뒤에 뺐다. 예수님은 시몬에게 ‘베드로’의 이름을,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주었다. 가룟유다는 ‘예수를 판 자’라고 마가의 수식어가 붙었다. 그 수식어가 가룟유다의 이름이 되었다.
인생은 결국 죽는다. 역사앞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계시록에도 ‘행위가 기록된 책들’이 나온다.
[계시록 20:12]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생명책도 있고, 보좌앞에 펼쳐진 ‘책들’에는 행위가 기록되어서 심판을 받는다. 마가의 기록이 의미심장하다. 사도로 모두 세움을 받았으나, 가룟유다는 그 행위가 ‘예수를 판 자’로 심판받았다. 가룟유다는 1달란트의 사명을 받았으나, 결국 땅에 묻고서 주인을 오해한 종이 되고 말았다. 그 행위가 그 이름이 된다. 마가의 기록에 ‘베드로’가 합당한 것은 그가 도망쳤으나, 이후에 참회하고 십자가의 도를 이루기까지 성도들에게 아름다운 고난의 행실을 보여주었다. 권력에 잠시 눈이 멀었던 세베대의 두 형제 야고보와 요한도 동일했다. 특히 요한은 마지막 사도로서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을 저술함으로 로마권력의 압제를 받는 기독교공동체에 의로운 등불로 그 소명을 감당했다. 그의 외침은 세상앞에 아주 작고 미세했으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의 기록은 ‘우레’와 같았다. 우레는 천둥이며, 천둥은 하늘의 움직임(天動)이다.
오늘, 지금, 나의 삶이 행위의 글자가 되어, 하늘나라 책들에 기록된다고 하니, 몹시 조심스러워진다.
무엇을 행하고, 무엇을 외치고, 무엇을 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