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4월 6일 창세기 6장과 마가복음 6장을 읽었다. 창세기 6장은 노아가 등장한다. 창세기 1~5장은 아담 가정 이야기이고, 6~10장은 노아 가정 이야기다. 창세기 1~10장은 아담과 노아에 대한 이야기다. 창세기 1장에서 사람을 창조하고, 창세기 2장에서도 사람을 다시 창조한다. 창세기 1장은 세상 사람들을 말하고, 창세기 2장은 종교적 사람들을 말한다. 하나님은 각각 구분해서 창조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섭리다. 어둠에서 빛을 구분하고, 물에서 뭍을 구분하고, 땅에서 식물을 구분하고, 식물에서 동물을 구분하고,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은 구분하고, 이집트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을 구분한다.
구분은 항상 어둠속에서 빛을 건져내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사람들속에서 다시 구분해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새롭게 하셨다. 그 과정이 창세기 2장에 은유적으로 표현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분을 받은 아담과 하와가 뱀의 말을 듣고서, 에덴동산을 떠나 동쪽으로 점점점 세상문화에 물들어간 것이다. 그 기간이 1600년이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창3:9~10)
아담이 하나님의 낯을 피해서 동산 나무 사이에 숨듯, 아담의 후손은 에덴의 동쪽으로 점점점 피신하듯 세상 사람이 되어갔다. 아벨을 죽인 가인도 동쪽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노아가 태어난 것이다. 노아때 노아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다. 그것은 “심판”이다. 곧 “물청소”다. 하나님의 심판에는 물청소도 있고, 불청소도 있고, 교만한 나무를 꺽는 도끼심판도 있다.
노아때는 물청소가 선포됐다. 왜냐면, 노아가 거주했던 마을이 4대 문명 발생지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우측으로 티그리스, 좌측으로 유프라데스가 흐르는 비옥한 초생달 지역에 노아의 마을이 위치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창6:2)
이 내용은 하나님께서 ‘자유연애’를 반대한다는 의미다. 현대사회에 이 대목을 어찌 이해해야할까? 요즘은 동성애까지 합법화되고, 동성애자 흑인 여성이 지난 4월 2일 시카고 시장으로 당선됐다. 라이트풋은 동성애 합법 결혼가정에 딸까지 둔 동성애 가정의 엄마이다. 이런 시대에 창세기 6장은 매우 당혹스러운 내용이다.
세상은 세상이고,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에게 창세기 6장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들’에 해당된다. 믿는 성도는 믿는 성도와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뤄야 믿음의 가정을 유지할 수 있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결혼하면, 그 결혼이 행복할 것 같지만, 결국 불행하다. 결혼, 사업, 진로, 직업, 투자….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간구하고 기도하는 것이 신앙인에게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성령의 은혜로서 ‘하나님이 보시기에’의 ‘하나님의 관점’을 허락하신다. 성경적 전문용어로 ‘영안’(靈眼)이라고 하는데, 성령의 눈을 뜻한다. 하나님의 코치를 받고서 행하면, 미래를 내다보고서 알려주니, 그 길이 결국 평안하다. 십자가의 길은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구원의 생명길이다. 사람이 보기에는 멸망이요, 치욕이요, 죽음이요, 모멸이요, 체포요, 실패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구원의 생명길’이다. 십자가를 거부하는 이유는 세상적 관점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십자가’는 생명이며, 영광이며, 영적 승리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해서 낳은 자녀가 ‘네피림’이다. 이들은 고대의 유명한 용사로 불렸다. 명성도 높았다. 세상속으로 들어가서 세상문화를 접하고, 세상을 점령해서 함께 동업하고 협력하면 더 잘될 것 같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명의 일을 해야한다. 세상을 거부하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소명을 받들고, 그것을 하라는 것이다. 가령, ‘네피림’은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이 결혼해서 낳은 자식인데, ‘네피림’은 하나님께 속하는가? 사람에게 속하는가? 네피림으로 분류되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을까? 그렇지 못할까? 하나님은 이것에 관심이 있다.
창세기 6:8에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는 구절이 있다. 이러한 구절 때문에 ‘시대별 메시야 이론’이 등장한다. 시대마다 메시야가 출현해서 그 시대를 구원한다는 이론인데, 구약시대는 각 시대마다 다양한 사건에서 하나님이 구원을 베풀었다. 소돔에서는 ‘롯’을 구원하셨고, 갈대아 우르에서는 ‘아브람과 그 가족’을 구출했다. 모세때는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했고, 여호수아때는 여호수아를 통해서 가나안에 들어가면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었다.
이러한 모든 구약의 사람과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로 귀결된다. 예수님은 지상천국을 위한 생명나무로서 구약의 모든 주인공들의 마침표이고, 새로운 시작점이다. 구원주는 오직 예수님이다. 구약과 신약은 이것이 다르다. 구약시대에는 육적인 다양한 상황에 다양한 구원주들이 등장했지만, 영혼을 구원하는 그리스도는 오직 예수님이고, 예수님이 오심으로 신약에는 ‘예수님’이 유일한 구원주이며, 다른 구원주는 없다.
노아 시대에 노아만 구원주이듯, 모세 시대에 모세만 구원주이듯, 예수님 시대에는 예수님만 구원주이다. 예수님은 부활의 영체로서 지금도 살아계시니, 살아계신 예수님의 시대에 그 누구도 구원주가 될 수 없다. 예수님께 이름부음을 받는 사도의 사명자는 존재할 수 있다. 베드로, 바울, 루터 등등 수많은 종교 개혁자들이 바로 ‘사도의 사명자’로서 택함을 받은 것이다.
“내가 성령의 사명을 받았다”고 누군가 말하면, “누구의 성령을 받았는가”라고 물어야한다. 예수의 성령을 받았으면, 예수의 진리로서 살아가는지 확인하면 된다. 예수의 진리를 거부하고, 십자가까지 거부하면, 그는 적그리스도다. 마지막때에 마귀가 잠시 풀려난다고 계시록에 예언되었다. 지금이 그때이니, 잠시 출옥한 마귀들의 유혹을 조심하면서 오직 예수님을 붙들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