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장에 ‘아담’이 나온다. 그 아담은 ‘사람’을 의미하면서, 에덴동산 관리자였고, ‘사람이 덜된 사람’을 상징한다. 하와는 아담의 아내다. 아담은 ‘남자가 덜된 남자’이고, 하와는 ‘여자가 덜된 여자’이다. 남자다운 남자, 여자다운 여자, 그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남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한 자이며, 하와는 하나님의 사람을 믿고 따른 자를 뜻한다. ‘돕는 배필’로서 하와는 ‘따르는 자’이다.
노아 시대에 노아가 아담이고, 그 가족이 하와다. 노아는 배를 만들었고, 그 가족도 함께 배를 만들면서 방주에 타서 구원을 받았다.
엘리야 시대에 엘리야가 아담이고, 엘리야를 따른 사르밧 과부가 하와이며, 엘리야에게 음식을 제공한 까마귀들이 하와이다.
예수님 시대에 예수님이 아담이고, 예수님을 믿고 따른 제자 공동체가 하와이다. 교회는 신앙공동체이며, ‘아내’이며 ‘신부’이다.
구약의 수많은 아담들은 첫 아담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였다. 한계가 그러했다. 그때 예수님이 오셔서 첫아담의 위치에서 영적 전쟁을 승리하신 것이다. 그것이 마태복음 4장에서 1차 승리를 하였고, 십자가에서 2차 승리를 하신 것이다. 완벽한 영적 승리이고, 신부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삶속에서 각자 마귀를 이길 수 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영적 마귀를 물리치고, 예수님의 말씀을 행함으로 생활전선의 승리다.
예수님은 ‘아담’이 되셨고, 이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마다 ‘하와’로서 신부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후아담이면,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후하와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신랑이고, 우리는 신부다. 신랑-신부의 구원섭리는 신약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계시록에 언급된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예수님이 오셨던 초림부터 시작됐다. 믿는 자마다 예수님을 신랑으로, 남편으로 받아드린 것이다.
요한복음 4장을 보라.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만난 장소가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고 되어있다. 야곱과 요셉은 ‘라헬’을 암시한다. 하나님이 보실 때, 사마리아 여인이 ‘라헬’과 같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의 라헬’을 아름다운 공주로 생각하겠지만, 그러한 인식은 ‘인본’이고, 하나님이 보실 때 ‘여자다운 여자’는 사마리아 여인처럼, 사르밧 과부처럼 가난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찾는 여인을 의미한다.
사르밧 과부는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을 영적 남편으로 삼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다. 그와 같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이 영적 남편이 된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이 6명인데, 지금 남편도 남편이 아니라고 예수님이 말했다. 예수님은 분명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고 했는데, 여자는 “남편이 없다”고 했다. 이후에 여자가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리이다”라고 하니, 예수님이 “네게 말하는 내가 그다”라고 대답했다. 곧,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적 남편이라는 뜻이다.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을 받아드린 그 순간에 이미 결혼한 관계다. 이 시대도 동일하다. 남편은 오직 예수님이다. 신랑도 오직 예수님이다. 예수님을 버린 자마다 ‘과부’가 되고, 다른 남편을 신랑으로 두는 자마다 예수님은 “네 남편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만 남편이다. 하나님만 유일신이듯, 예수님만 독생자이고, 참된 남편이다. 이것을 정녕 알아야한다. 에덴동산에 아담이 1명이듯, 인류가운데 보냄을 받은 참된 아담은 오직 예수님이다. 예수님 외에는 모두 가짜요, 적그리스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