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가방에서 김치냄새가 나면서부터 나는 사람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때는 바야흐로 인심좋은 교회 성도분의 나눠줌에서 비롯되었다. 교회를 출발해서 집에 오면, 은혜로운 비닐봉투가 가방에서 출애굽한다. 1시간 남짓, 칠흑같은 무덤속에 갇힌 반찬들이 냉장고로 들어가기까지, 나는 점점점 사람이 되어간다. 작은 손길에 고마움이 생겨나고, 나는 다시 태어난다. 왜 종교인이 사람이 되길 거부하고, 신이 되길 원할까? 사람이 사랍답게 살고, 사람 노릇하며 사는 것, 그것이 참된 신앙인이 아닐까? 아담은 곧 사람이다. ‘사람다운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사람답게, 사람냄새 풀풀 풍기면서, 눈물도 알고, 슬픔도 알고, 웃음도 알고, 불행과 행복도 알고, 약함과 강함도 알고, 무지와 지혜도 알고, 갇힘과 자유도 알고, 가난과 부유를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새롭게 교회를 바꾸고, ‘주님’까지 새롭게 바꾸고,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고백하고 살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신앙은 결혼으로 비유한다. 결혼은 생활이다. 신앙도 생활이다.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삶이 옛날 교회보다 훨씬 인간적으로 정감있고, 삶의 의욕도 생기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능력도 얻는다. 오늘은 요셉의 이야기가 설교말씀에 나왔다. 요셉은 종으로 팔렸다가, 강간범으로 누명을 썼다가, 꿈해몽을 잘해서 총리대신이 된 인물로 익히 알려져 있는데, 교회에서 목사님은 창세기 39장 21절을 강조하시며, 은혜와 형통의 의미를 새롭게 말씀하셨다. 감옥에 갇힌 요셉에게 하나님은 ‘은혜와 형통’을 주셨다. 감옥에 갇혔는데, 그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은혜와 형통’이라는 것이다. 아!! 놀라운 십자가 신학이 ‘요셉의 감옥’에서도 드러나니, 하나님의 은혜와 형통은 측량할 길이 없다.
[창39:20~23]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요셉은 감옥에 있었으나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궁궐의 평안함이 있었고, 바로는 궁궐에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불길한 꿈을 주시니, 해결책을 찾지 못해서 번뇌의 감옥에 갇혔다. 인생은 하나님이 함께 할 때, 그것이 형통이고, 은혜이고, 선물이고, 축복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받는 것이 복이 아니고,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받는 것이 축복이다. 감옥에 갇혀도, 그것이 축복이고, 형통이고, 은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내 배낭에서, 내 성경에서 김치냄새가 나는 이것이 곧 ‘향긋한 형통’이다. 아멘!! 미나리 부침개를 먹고 가라고 했는데, 군침을 삼키면서 먼저 나왔다. 미나리 부침개가 눈앞에 왔다갔다한다. 이것이 행복한 인생이 아니던가!!
형통(亨通) : 亨은 ㅗ口了의 합성으로, 제사솥을 본떴고, ㅗ口은 뚜껑을 말하고, 了는 ‘마칠 료’로서 제사를 완전히 마쳤다는 의미다. 완벽한 제물을 드림으로 신의 축복을 받는다는 뜻이다. 通은 甬과 辶의 합성으로, 甬은 울타리를 말하고, 辶은 걷다는 뜻이다. 울타리 밖으로 걷는 길을 의미한다. 通은 서로 길을 내서 통하는 것이다. 형통(亨通)은 인간과 신이 서로 길을 내서 통하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