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까페요, 감옥이요, 교회다. 하루종일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창문을 닫고, 공기청정기로 환기하며 살았다. 비행기 모드로 핸드폰을 전환하면, 집은 비행기다. 언젠가, 누군가, “소통을 위해 핸드폰을 만들면서, 우리는 불통의 시대를 살게 됐다”고 토로했다. 핸드폰없이는 소통할 수 없는 시대이니, 핸드폰이 단절의 상징이 된 것을 발견한 어떤 선각자의 호소였다. 그러한 호소는 인류문명앞에 메아리가 되었으나, 내게는 유효하게 작용한다.
나는 자주 취재할 때나, 교회 설교를 들을 때나, 소중한 사람과 만날 때는 ‘비행기 모드’로 전환한다. 비행기 모드는 사람이 현재 그 곳에 머물게 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핸드폰이 없던 그 시절에도 낭만이 있었으니….. 예수님은 핸드폰이 없었으니….. 핸드폰이 꼭 신앙에 유익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오늘은 어떤 분이 카톡으로 연락이 가능하냐고 물어서, 전화를 했더니, 이런저런 안부를 묻는다. 살아가는 것은 누구나 고단하며, 버거운 일이며, 애국심으로 나라를 걱정한다. 그리고, 돌아서면 우리는 땅에 의존하고 살아가야할 한그루 나무이다. 언젠가, 지금 이 순간을 돌아볼 때, “참 좋았더라”고 고백할 수 있는 선택과 결정으로 인생을 살아가야한다. ‘내려놓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더라. 밥을 배부르게 먹고 싶을 때, 숟갈을 놓는 것이 ‘내려놓음’의 시작점이다. 삶이 무척 고단하여, 살아보니, 내가 있는 집도 성경책 1권이면, 충분히 교회가 될 수 있겠다. 그렇게 편하게 마음먹고 살기로 했다.
한동안 구석에 밀어둔 출판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몇몇 분들의 출판의뢰를 다시 맡기로 했다. 그렇다고, 쫓아다니면서 살지는 말아야겠다. 내게 주어진 인생의 수명속에 하나님을 찾으며, 부르며, 그렇게 살다보면, 혹시 찬란한 봄이 오려나. 내게도 꽃이 피려나. 꽃이 피지 못하여도,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
펄펄 끓는 냄비에 ‘나가사끼 라면’을 넣고, ‘떡’도 넣고, 이제 계란을 풀면, ‘계란 떡라면’이 요리된다. 아마도, 예수님은 이런 라면 먹지 못했으리라. 엘리야도 떡과 고기는 먹었어도, 이렇게 푸짐한 떡라면은 먹지 못했으리라. 알고 보면, 삶은 행복의 여유가 충분하다. 내가 사는 집이 까페요, 감옥이요, 교회요, 장막이요, 식당이다. 문을 닫고, 오늘은 편안하다. 오늘 나의 저녁 안식은 ‘나가사끼 떡라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