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장 포도원 연쇄 살인사건 비유는 읽을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포도원 주인이 아들을 보내는 장면과 농부들이 살인을 계획하는 장면은 극적 대비를 이룬다. 포도원 주인의 생각은 무엇일까? 농부들은 탐욕이 끝이 없어서, 상속자인 아들을 ‘상속자이니’ 죽여버린다. 끔찍하다.
소출 얼마를 받기 위해서 포도원 주인은 계속 종을 보냈다. ‘소출 얼마’가 무엇일까? 유대인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제물을 잡고, 소를 잡고, 하나님께 드릴 것을 드렸는데, 왜 예수님은 ‘소출을 바치지 않은 농부들’로 비유했을까? 성전에서 유대인들은 빌라도와 대항하면서 하나님께 제사를 지속적으로 드리면서, 야훼 신앙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왜 예수님은 ‘소출을 바치지 않는 농부들’로 표현했을까?
우리가 세금을 내는 것은 국가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옛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는 중국에 조공을 바쳤다. 조공을 바친 것은 ‘대국에 속한 소국’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소출을 바친다는 것은 소유권과 상관있다. 농부들이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죽이면서 한 그 말이 ‘비유의 핵심’이다. “우리가 차지하자”고 한 그 말이 ‘핵심’이다.
포도원을 차지하기로 음모를 꾸민 그들은 차지하지 못했다. 왜냐면, 포도원 주인이 농부들을 진멸하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해당 비유에서는 ‘농부들을 진멸했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지만, ‘열매맺는 백성이 받는다’(마21:43)라고 되어있다. ‘열매맺는 백성이 받는다’는 뜻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를 준다’(마21:41)는 의미다. 열매맺는 백성은 ‘소작농의 책임을 다하는 성도’를 뜻한다. 포도원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포도원은 무엇인가? 유산은 무엇인가? 농부들은 누구인가? 농부들은 비유를 들은 현장에서 이미 나와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바리새인들이다. 즉, 종교 지도자들이다. 그들이 소출을 바치지 않았다는 것은 ‘자신의 소유’로 삼았다는 말이다. 종교는 개인의 소유로 삼으면 안된다. 종교는 오직 하나님을 섬기며, 지도자가 특히 하나님의 말씀앞에 온전해야한다.
해당 비유말씀에 따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바리새인들은 소작농에서 박탈되었다. 열매맺는 백성은 새로운 소작농을 뜻한다. 그렇다면, 소유권은 누구인가? 포도원 주인이며, 그 아들인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상속자로서 이 땅에 오셔서 죽임을 당하셨지만, 다시 부활하셨다. 부활의 몸으로 이 땅에 계시면서 ‘포도원의 상속자’가 되었다. 2천년 동안 예수님은 ‘착한 소작농들’을 찾고 계신다. 소출을 바친다는 것은 소유권을 자신의 것으로 삼지 않는 종교 지도자를 뜻한다.
어떤 사람들은 해당 비유를 오해해서, “열매맺는 백성이 포도원을 차지한다”라거나, “열매맺는 백성이 포도원을 소유한다”라고 생각하는데, 포도원의 주인은 예수님이고, 포도원 나라의 왕은 예수님이며, 소출을 바치지 않는 백성과 농부들은 ‘나쁜 농부들’과 동일한 결말을 당하게 된다. 포도원 상속분쟁 살인사건은 ‘소유권 분쟁’ 사건이며, ‘스스로 주인이 되려는 종교 지도자의 탐욕’을 비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