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2장을 읽으면, 예수님은 편하게 밥먹지 못하였다. 식사문제를 놓고서 종교법으로 문제삼아서 그렇다. 겉으로 보기엔, 그들이 예수님을 공격한 것 같지만, 자세히 파악하면 예수님이 행위로서 그들을 공격한 것일 수도 있다. 예수님은 공격적 선교를 펼치셨다. 선교(宣敎)는 가르침을 널리 펼치는 것이고, 전도(傳道)는 진리의 길을 전달(傳達)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주어진 사건과 상황속에서 전도와 선교의 정신으로 사셨다.
마가복음 2장에는 ▲중풍병자 죄사함 ▲죄인과 세리와 식사 ▲금식논쟁 ▲안식일 밀밭 식사 등이 나온다. 중풍병자 죄문제를 제외하면 모두 식사문제다. ① 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② 왜 예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는가 ③ 왜 안식일에 벼이삭을 먹었는가라고 종교인들이 예수님을 공격했다. 그때, 예수님은 물러서지 않고, 그 질문을 다시 공격했다.
죄사함을 받은 중풍병자는 이후로 어떻게 살았을까? 가족이 분명 있을 것이다. 중풍병자를 들 것에 메고서 소방대원처럼 데려온 4명은 누구였을까? 마태복음, 마가복음과 다르게, 누가복음에서는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앞에 달아 내리니”라고 했다. 화재가 발생하면, 부상자를 들 것에 눕혀서 구제하는데, 중풍병자를 그렇게 공중으로 내려서 예수님 앞에 데려온 것이다. 간이 침상을 들고 떠난 중풍병자와 4친구는 이후 어떻게 지냈을까? 선한 사마리아인의 도움을 받은 ‘거의 죽은 자’가 고백할 그 은혜로 살았을까?
3가지 식사문제와 관련해 첫 번째 식사는 ‘죄인과 세리’를 공격하는 질문이고, 2번째와 3번째는 제자들을 공격하는 질문이다. 3가지 질문에 정답은 ‘예수님’이다. 예수님이 목자가 되어서 그들의 도피성이 되어 주셨다. 세리와 죄인들에 대해서는 ‘의원’의 도피성이 되셨고,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신랑의 혼인잔치’로서 도피성이 되어 주셨고,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먹은 것에 대해서 ‘다윗의 진설병’으로 도피성이 되어주셨다. 예수님이 없으면 제자들도 없고, 세리와 죄인들도 의미가 없다.
이런 모든 상황을 종합하면, 예수님은 제도의 개혁보다 ‘사람의 변화’를 찾으시는 분임을 분명 알 수 있다. 마가복음 2장에서 눈여겨 볼 것은 예수님이 ①중풍병자 ②세리 마태 ③죄인과 세리 ④제자들을 얻으셨다. 그리고, 마가복음 3장에서 12사도를 임명하고 본격적인 전도활동을 시작하셨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는다”(막2:22)는 표현이 나온다. 짝을 말한다. 신랑은 신부를 만난다. 신랑(新郞)은 새로운 남자이고, 신부(新婦)는 새로운 부인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끼리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새포도주는 신랑이고, 새부대는 제자들을 뜻한다. 포도주를 담는 부대는 ‘새부대’와 ‘헌부대’가 존재하지만, 사람은 새롭게 만들면 ‘새부대’가 된다. 새롭게 만드는 것이 곧 새로운 마음을 받는 것이며,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