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동학혁명이나 촛불혁명처럼 충분히 정권탈환을 시도할 수도 있었는데, 민란을 일으키지 않고, 성전대청소를 하고 조용히 물러갔다가 다시 나타나서 성경강론을 펼치셨다. 공개토론회를 개최하면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질문을 받으면서 말씀으로 논쟁했다. 유월절이 다가오므로, 성전에서는 제물을 준비해야하는데, 예수님은 소와 양과 비둘기를 내쫓고, 매매상인과 환전상인도 내쫓고, 상까지 엎으시고, 출입자체를 금지했다. ‘관계자외 출입금지’를 선언하신 것이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성전은 곧 예수님이다. 사람이 성전이다. 믿는 성도는 이 사건을 깊게 고찰하며, 스스로 ‘강도의 소굴’이 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겠다. 성전 내적 대청소를 하기 위해서, 때로는 ‘관계자외 출입금지’를 스스로 선언할 수 있어야한다.
뇌(腦 )는 月巛囟의 결합이다. 月은 신체를 뜻하고, 巛은 머리카락이고, 囟(머리통 신)은 머리다. 囟은 잉크통처럼 생겼다. 머릿속에는 뇌가 들어있는데, 뇌속에는 ‘생각’이 들어있다. 돈을 생각하면 뇌는 지갑과 금고가 된다. 뇌는 무엇을 담느냐로 그 운명이 결정된다. 밥통은 밥 담는 통이고, 반찬통은 반찬 담는 통이다. 담는 그릇은 그 내용으로 이름이 정해진다. 예루살렘 성전에 각종 제물과 돈버는 상인과 독립투쟁 무장세력들로 넘쳐나고, 기도하는 성도의 간구는 사라지니, 하나님이 머물 수가 없었다. 인생의 생각속에 성령이 머물지 못하고, 각종 인본이 우상처럼 가득차면, 사람성전이 강도의 소굴이 된다. 마가복음 11장 사건은 4가지 밭비유와 계시록 7교회 편지를 함께 놓고 읽으보면, 인생이 어떻게 살아야할지 답이 보인다. 예수님은 성전의 가치를 고수했다.
4가지 밭비유에서 말씀이 뿌리내리지 못한 것은 ▲새 ▲돌 ▲가시덤불 때문이다. 성전속에 말씀이 제대로 울려퍼지지 못하는 것은 종교지도자들이 돈과 이념과 권력덤불에 덮여 있어서 그렇다. 자신의 마음밭은 옥토밭이라고 믿지만, 계시록에 등장하는 일곱교회처럼, 인생은 자신도 모르는 모순에 빠져 있을 수도 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닌 것은 아니다. 자신이 보기에 옳아도, 세상이 보기에 좋아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잘못된 것은 고치고, 자르고, 버려야한다. 예수님이 내쫓고 엎고 금지시킨 성전 대청소는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산헤드린 의회에서 허락한 일들이며, 율법을 위해서 필요에 맞게 오랫동안 해오던 일들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노끈을 채찍삼아 제물들을 내쫓아버렸다.
예수님이 육신으로 살아계실 때 성전에 방문해서 호통치면서 대청소를 하셨는데, 사람성전과 교회를 날마다 방문하실 것이다. 사람이 모를 뿐이다. 예수님이 채찍을 가지고 하던 일을 망치면서 나타나실 수도 있고, 기도하는 성도의 소리를 듣고 위로하고, 평강을 주기 위해서 나타나실 수도 있다.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에게는 평강을 주셨다.
나는 뇌속에 어떤 이념과 사상으로 살아가는가? 돈을 중심하면 자본주의자이다. 권리와 법을 중심하면 민주주의자이고, 법치주의자이다. 양심과 도덕과 인격을 중심하면 도덕주의자이다. 모두 필요하고, 사회체제를 유지하기위해 알아야할 내용들이다. 나의 뇌속에 말씀주의자가 되었는가?
계시록에는 ▲말씀을 읽는 자 ▲말씀을 듣는 자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 읽고 듣고 지키는 것은 분리될 수가 없다. 부자청년은 영생의 길을 정확히 듣고, 이해했다. 그런데, 집으로 가는 길에 근심하면서 떠났다. 가다가 감동이 들어서 말씀을 지켰을지, 끝은 모르겠지만,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 낙타가 되었을까? 말씀을 읽고, 듣는 것은 쉽다. 듣고 지키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듯’ 어려운 것같다.
** 주의(主義)는 주된 정의로서, 주인으로 삼는 정의다. 민주주의(民主主義)는 백성을 주인으로 삼는 것을 정의로 본다. 자본주의(資本主義)는 자본과 돈과 경제를 주된 정의로 본다. 법치주의(法治主義)는 법의 통치를 주된 정의로 본다. 도덕주의(道德主義)는 도덕가치를 주된 정의로 본다. 사회주의(社會主義)는 사회전체를 주된 정의로 본다. 사회주의는 전체주의와 같다. 공산주의(共産主義)는 함께 생산하고 함께 분배하는 것을 주된 정의로 본다. 개인주의(個人主義)는 각 개인의 가치를 주된 정의로 본다. 이기주의(利己主義)는 자기에게 이익된 것을 주된 정의로 본다. 인본주의(人本主義)는 사람을 근본으로 보고, 신본주의(神本主義)는 하나님을 근본으로 보는 정의다. 성전과 성도는 신본주의로 살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