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의 남매가 마법의 옷장속에 들어갔다가 30년이 지나고,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서 다시 옷장을 나왔더니, 30분 정도 시간이 소요되었다. 영화속 나니아 연대기다. 내 인생의 나니아 연대기는 그렇게 동화적이지 못하다. 오늘, 30년전 오늘, 나는 고2 순천의 남정동에 있었고, 작은 자취방에서 기도했었다. 그리고, 새로운 옷장속으로 들어갔다가, 지난해 겨우 옷장에서 나왔다. 옷장을 열고 들어간 곳은 뭔가 특별하였으나, 흐려진 기억을 더듬어 옷장을 찾아서 나오니, 나는 30년이 흘렀다. 인생의 옷장은 시간의 압축이 없다. 이것이 영화와 현실의 차이다.
영화는 현실의 뒷면을 상상력으로 보여준다. 현실과 연결된 상상의 세계이다.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옷장속으로 들어가니, 마녀가 마법으로 겨울을 일으키고, 모든 동물과 사람을 동상으로 만들었다. 전쟁의 비극이 그와 같음을 말하고 있다. 봄이 온다는 것은 무엇인가? 4남매가 피난을 갔을 때 마차를 끌고 오는 그 장면은 마녀가 겨울왕국의 썰매를 타고 다니는 것과 흡사하다. 게다가 시골집에 도착했을 때, “동상은 만지지 말아요”라고 했는데, 옷장속으로 들어가니 바로 마녀의 집에 동상들이 있었다.
현실과 옷장속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계시록도 환상으로 보는 천국의 세계는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고, 일곱봉인과 일곱나팔과 일곱 대접의 재앙이 내려지는데, 바벨론 성읍이 멸망당하는데, 실상은 일곱교회와 로마제국의 압제를 뜻한다. 지금 시대로 말하면, 천주교와 기독교를 뜻하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이뤄진 인류문명을 말한다. 나니아 연대기의 옷장속은 믿음의 눈으로 보는 현실의 너머 세계다. 현실을 주관하는 두 세력은 선악으로 구분된다. 선은 하나님, 악은 사탄이다. 두 세계는 현실에서도 분명히 구분되는데, 우리는 자주 ‘나는 선편’으로 착각할 뿐이다.
옷장속에 들어가니 왕국이 펼쳐진다. 그처럼 마음속에서 천국이 펼쳐진다. 겨자씨처럼 작지만, 그 미래는 위대하다. 그러므로, 현실속에서 성경의 옷장을 항상 펼치면서, 하나님과 교제에 힘써야한다. 우리는 성경을 펼치고, 찬송을 부르는데, 그것이 하늘의 군대가 현실에 내려오고, 불화살이 발사되면서 어둠의 세력을 물리칠 수도 있다. 친구들을 통해서 무서움과 두려움이 전해질 때, 그 친구의 말속에 어둠의 마녀 군대가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 현실은 현실인데, 그 사람의 옷장속에 들어가면, 전혀 다른 세계가 존재할 수도 있다. 옷장은 곧 그 사람의 마음세계를 뜻한다. 누구의 소리를 들었을 때, 갑자기 공포가 엄습하면, 그 사람의 옷장속에서 어둠이 밀려온 것이니, 그때마다 하나님을 부르고, 성령의 마음으로 복음의 전사가 되어야한다.
틸다 스윈튼이 연기한 ‘하얀 마녀’는 계시록에서는 이세벨을 말하고, 음녀를 뜻한다. 음녀가 다스리는 세계는 제국이며, 권력으로 다스려지며, 세상의 향락문화이다. 복음의 순결과 겸손과 긍휼을 부정하고, 사람을 도구로 삼고, 짐승들의 약육강식처럼 지배와 소유로 설계된 제국주의 체계다. 사람의 자유로운 영혼을 제거하고, 우상처럼 창조성이 부정되면서 절대적 굴종과 통제만 존재하는 바벨론의 세계이다. 시키는대로 모든 것을 하는 세계가 바로 ‘하얀 마녀의 겨울왕국’이다. 현실세계에서도 사람의 권력이 너무 높아서, 성도의 의견이 묵살되는 교회는 ‘하얀마녀의 교회’라고 할 수 있다. 계시록에서도 일곱교회중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떠난 교회가 많았다.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에서 사자는 유다지파의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4남매는 4복음서를 의미하며, 계시록의 4천사와 연결된다. 아슬란이 배신자 에드먼드를 대신해서 제단의 돌위에서 죽임을 당한 장면은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그대로 재현한다. 툼누스와 에드먼드가 함께 얼음왕국의 감옥에 갇힌 장면은 둘의 유사성을 암시한다. 에드먼드가 폭격을 당했을 때 아버지 사진을 가지고 방공호로 달려갔다. 그처럼 툼누스도 아버지 사진을 집에 두고 있었다. 둘은 닮은 꼴이다. 툼누스는 에드먼드의 옷장속일 수 있다.
옷장속의 개념을 새롭게 인식하면, 우리는 교회문을 열고서 천국속에 들어간다고 믿을 수 있다. 옷장속으로 들어가니, 나니아 연대기가 펼쳐졌다. 그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의 옷장속이다. 예수님은 당신을 ‘생명나무’로 표현했다. 새로운 세계, 천국으로 인도하는 문이 곧 예수님이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과 같다. 교회에 가는 것은 예수님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나니아 연대기로 해석하면 옷장속으로 들어가서, 천국여행을 하는 것이다.
계시록을 읽으면서, 14만4천의 무리의 인맞는 장면이나, 새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사건은 교회에서 찬송을 부르고,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것을 뜻한다. 교회예배가 믿음의 옷장속으로 들어가서 보면, 계시록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 세계는 상징과 비유로 되어 있어서 그렇다. 그러므로, 찬송을 부르면서, 말씀을 들으면서, 삶속에서, 교회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14만4천은 어린양이 인도하는데로 가는 무리이니, 어린양은 곧 말씀이며, 교회를 통해서 성도를 인도한다. 일곱교회는 ‘새 예루살렘’이다. 교회에 다니면서, 천국을 따로국밥으로 생각하면 절대로 안된다. 평범한 옷장속에 나니아 연대기가 들어있듯이, 교회가 곧 천국으로 통하는 비밀통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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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