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장창훈 기자]=아름다울 가(佳)도 미(美)처럼 자주 사용된다. 미인박명(美人薄命)도 있지만, 가인박명(佳人薄命)도 있다. 같은 뜻이다. 美는 양처럼 얼굴이 흰 미인이고, 佳는 옥처럼 얼굴이 흰 미인이다. 비유한 객체가 다를 뿐, 얼굴빛이 흰색이고, 곱다는 뜻이다. 가약(佳約)은 아름다운 약속으로, 부부의 언약을 뜻한다.
佳는 人과 圭의 합성이며, 발음기호는 [圭]이다. ‘규’에서 ‘가’의 발음이 나왔다. 圭는 土土의 합성으로 본다. 흙위에 흙이 있다는 것은 ‘땅의 소유권’이며, 귀족을 의미한다. 민주주의 사회는 토지 소유권이 인정되면서, 백성이 땅을 소유했지만, 왕족시대에는 귀족들만 땅을 소유했다. 圭는 왕이 주는 귀족 신분증이며, 주민증과 비슷하다.
홀은 왕의 권위를 상징하며, 작은 노리개와 큰 지팡이가 존재한다. 흰 옥으로 만들어진 홀은 밑에 장식품이 있었고, 신분과 계급이 적혔다. 왕궁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홀을 가지고 신분을 입증했다. 佳는 복부인이며, 귀족여인이며, 얼굴은 옥색으로 귀한 존재다. 에스더 왕비가 곧 佳에 해당된다.
圭는 누가 주는가? 왕이다. 왕은 누구인가? 기독교인은 예수님이고, 이슬람은 마호멧이며, 무신론은 각자 멘토를 따르며, 자신을 왕으로 믿는 대담한 영웅도 많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며, 이 땅의 왕은 곧 예수님이다. 에스더를 성경적으로 존경하는 이유는 그녀가 왕비여서 그런 것이 아니다. 왕비임에도 불구하고,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유대민족을 구원했기 때문이다. 그 시대 유대민족에게 에스더는 민족의 구원자였다.
에스더에게 ‘圭’는 왕비 신분이 아니고, 모르드개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자신의 정체성이 유대인임을 자각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백성이 되면서, 사회적 신분의 왕비로서 하나님의 사명자가 된 것이다. 에스더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했다면, 왕후 이세벨과 무엇이 다르랴!! (이세벨이 왕후로 있던 아합시대에는 사르밧 과부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된 ‘믿음의 왕후’였다.)
계시록은 이 부분을 매우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圭는 누가 주는가? 어린양이 주고, 힘센 용도 준다. 어린양이 주는 인(印)을 받는 것, 힘센 용이 주는 표(標)를 받는 것은 각각 자유다. 그 결과는 하늘과 땅이다. 어린양이 주는 인(印)을 받는 것은 교회에 다니면서, 그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면서 생활속에서 예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힘센 용이 주는 표를 받는 것은 세상사람의 말을 듣고 따라서 흥청망청 사는 것이다. 계시록은 말한다. 어린양이 힘센 용(龍)을 이겼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아멘!!
[계시록 2:17]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여기서 ‘흰 돌’은 예수님이다. 이것은 팩트이며, 변경될 수 없는 영원한 진리다. 새 이름은 누구인가? 받는 자의 새이름이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받게 되는 새로운 이름과 사명이다. 받는 자만 자신의 새이름을 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흰 돌’임을 알아야한다. 이기는 그에게 ‘만나와 흰 돌’을 주는 것이다. 예수님을 통해서 부여되는 새이름의 가치를 반드시 알아야한다. 어떤 사람은 ‘새이름’만 강조하면서, 흰돌의 중요성을 망각한다. 흰돌위에 새겨진 새이름이다. 흰돌이 곧 왕이 내린 ‘홀’이며, 그 홀에는 왕이 부여하는 신분과 사명과 이름이 있다. 흰돌이 바로 예수님이 주시는 ‘신분증’이며, 새이름은 받는 자의 새로운 이름과 사명인 것이다. 나도 예수님을 통해 새이름을 받았다.
** 계시록 2:17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본문 텍스트를 중심한 개인적 견해임. 충분히 다른 해석도 존재할 수 있으며, 진리는 다양성으로 보완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