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街路樹)에 ‘街’는 ‘거리 가’라고 한다. 行과 圭의 합성이다. 行은 다닐 행, 圭는 홀 규이다. 行은 사람의 두 다리를 본떴다. 본래는 교차로를 본떴다. 길을 걷는 것은 사람의 다리다. 교차로로 해석해도 되고, 다리로 해석해도 된다. 뜻글자는 연결된 의미로 해석하면 서로 통한다. 근본은 교차로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사람은 도로를 걸어갈 수 없다. 오직, 신호등이 허락하는 30초만 사람이 횡단할 수 있고, 나머지는 자동차와 버스가 다닌다. 옛날 시대도 동일했다. 대로(大路)는 백성이 다닐 수 없었다. 마차와 수레를 타고서 귀족들이 다닐 수 있었다. 피맛골을 피마(避馬)다. 말을 피해서 다니는 골목길이 피맛골이다. 백성들은 귀족이 다니는 길을 걸을 수 없었다. 街는 귀족들이 다니는 길을 말하며, 백성과 상관없다.
나는 가끔 역사여행을 목적해서 경복궁에 간다. 표를 끊고, 경복궁에 들어서는 그 순간 나는 왕이다. 왕복을 입지 않아도, 왕처럼 걸어다닐 수 있는 경복궁의 문화탐방은 현대인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혜택이다. 역사탐방은 역사적 사실을 현실로 호출하며, 소환한다. 검사는 범인에게 소환장을 발부해서 조사할 권한이 있다면, 역사가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소환해서 현재에 불러올 수 있는 효력이 있다.
行과 路와 道는 비슷하다. 行은 4거리를 말하고, 路는 두 다리로 걷는 길이며, 道는 머리가 걷는 길이다. 道가 가장 고귀한 길이다. 머리 수(首)는 최고 높은 왕이다. 왕이 다니는 길이 곧 ‘道’이다. 정신의 길을 말한다. 양심(良心)과 정의(正義)와 긍휼(矜恤)과 사랑(思郞)과 관용(寬容)과 용서(容恕)와 희생은 정신이 가야할 바른 길이다.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압축하면 십자가의 도(道)다.
길과 집이다. 집은 머무는 공간이며, 길은 출발하는 과정이다. 출발점은 집이며, 길은 과정이며, 도착점에 집이 있다. 집에서 집으로 가면서 과정은 ‘길’이다. 예수님은 ‘길’이다. 어디서 출발해서 어디에 도착하는가? 예수님은 요한복음에 따르면 본래 하나님의 품에 계셨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모든 인생은 예수님의 궤적을 따라간다. 그러므로, 출발점은 하나님이며, 도착점도 하나님이다. 계시록에 하나님은 시작과 마침, 알파와 오메가로 표현된다. 하나님은 출발이며, 도착이다. 마라톤은 항상 출발점이 도착점이다. 시험지를 모두 풀면, 수험생은 시험지를 반납하고 교실을 떠난다. 인생도 그렇다.
사람이 살아가는 길은 자유롭다.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그것은 자유다. 단지, 책임이 따른다. 외국에서는 남자가 남자를 좋아해서 결혼할 수도 있고, 남자가 여자를 좋아해서 결혼할 수도 있다. 그것은 자유다. 단지, 책임이 따른다. 남자가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일컬어 동성애자라고 한다. 남자가 여자를 좋아해서 결혼하는 것을 이성애자라고 한다. 남자가 여자들을 좋아해서 넘치는 정욕으로 살아가면, 음란하다고 한다. 모두 자유다. 그 자유는 책임이 따른다. 예수님이 갔던 길이 정답이다. 예수님은 ‘동성애자와 정욕의 방종’을 철저히 경계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십자가의 길’을 유언으로 남기고, 하나님께 가셨다. 무덤속에 묻히고, 살아나셨다. 십자가는 ‘버림’이다. ‘절제’다. ‘내려놓음’이다. ‘낮아짐’이다. ‘분노의 표출’이 아니고, ‘분노의 억제’다. 억제된 분노로서 십자가로 저항하는 정신은 ‘소금과 빛’의 삶이다. 과연, 신앙인이 이렇게 살 수 있는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이 갔던 그 길로 가는 것이다. 예수님이 기관차라면, 교회는 기관차에 연결된 열차와 같다.
1C 제자 공동체는 기관차였고, 예수님이 기관장이다. 십자가의 선로를 따라서 예수님은 하늘길로 올라가셨다. 기관차에 연결된 2C, 3C 열차는 카타콤의 무덤이 배경처럼 펼쳐졌고, 이후에도 다양한 카타콤이 펼쳐진다. 21C는 21번째 열차다. 이 시대의 인류문명은 이념의 카타콤이 펼쳐지고, 향락과 자유가 물결친다.
나는 예수님의 KTX를 타고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 선로위에 있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분명 예수님의 기관차에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 믿는 성도는 항상 확인해야한다. 교회의 열차가 예수님의 기관차에 연결됐는가? 기관장이 예수님이 아니면, 열차는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 그때는 열차에서 내려야한다. 내리면, 예수님이 곧 ‘성령의 열차’를 보내주실 것이다. 이것이 시대마다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열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