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장창훈 보도국장]=성경은 구원을 향하는 ‘좁은 문’이다. 책은 많지만, 책을 읽게 되면 그 사상에 물든다. 물든다는 것은 세뇌(洗腦)다. 뇌는 보고 듣고 읽으면서 씻김(洗)으로 물든다. 세뇌는 새로운 정보와 인식이 씻는 것이고, 색칠하는 것이다. 유물론적 사상이 강한 책을 읽고 나면 뇌는 유물론으로 기울게 된다. 이것이 인간이다. 드라마를 보거나, 위인전을 읽거나, 거의 비슷하다. 예외는 없다.
좋은 영화를 보면, 대부분 감동하듯 그렇다. 그래서 성경을 자주 읽는 것이 좋다. 성경은 하나님을 향하는 다양한 사건이 들어있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서 돈과 권력과 명예를 벗어나서 하나님의 신본주의를 추구할 수 있도록 성령의 감동을 준다.
여호수아 장군도 날마다 성경의 독서읽기를 통해서 가나안 땅을 정복했다. 여리고성의 첫승을 거뒀을 때, 아이성에서 첫 패배를 거뒀을 때, 모두 성경읽기와 함께 했다. 과연 우리는 축구를 응원하면서 승리했을 때, 패배했을 때, 성경읽기를 통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가? 우리는 날마다 성경읽기를 어떻게 해야할지, 그것을 고민해야한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하나님께 추천했거나,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지목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중 하나는 ‘비선실세’보다 ‘성경읽기’였을 것이다.
[여호수아 1:1~9]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중략)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날마다 성경을 읽을 때, 성경 자체를 읽는 것이 가장 좋다. 요즘은 성경 앱이 발달해서, 다양한 번역본을 바로 볼 수 있다. 나는 홀리넷 (http://www.holybible.or.kr)을 활용한다. 이곳에서 성경을 검색하면, 8개 번역본을 볼 수 있다. 요한복음 2:8에 “연회장에게”라는 문구가 있어서, 바로 새번역으로 확인하니 “잔치를 맡은 이에게”로 되어 있었다. 연회장(宴會長)인 것을 확인한 것이다. 이러한 방법이 관찰의 관찰이다. 어떤 사실은 다른 사실로 검증되면서, 사실이 사실로 입증된다.
이단들이 난무하고, 영감을 빙자한 무당식 성령파가 세상을 혹세무민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나에게 성령이 계시했다”이다. 그 말을 들어보면, 전율이 있다. 계시를 받은 당사자에게 어떤 영이 임재한 것이 느껴지고, 그 당사자도 무당의 초혼처럼 강림한 무엇이 있어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 계시자에게 어떤 영혼이 임재했든지, 그것은 그 사람의 말일 뿐이다. 성경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씀이다. 이것으로 충분히 각 개인의 구원을 완성할 수 있다. 혹세무민에 끌려가면, 그들은 ‘영혼’을 사냥한다. 속으면 안된다. 그리스도 예수 외에 구원주는 없다.
신문에서 기사의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믿어야한다. 기사를 꼼꼼히 분석해보면, 그 기자가 보인다. 조선일보에 보도되었으니, 그것은 사실이다고 하면, 안된다. 한겨레에 보도되었다고 해도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관점’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독자는 기자의 관점을 볼 수 있어야한다. 관점을 보는 방법은 그 뉴스의 반대편을 확인하는 것이다. 정반합의 변증법이 여기에 해당된다.
정반합처럼, 성도는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각종 성경해석들을 무작정 받아드리면 안된다. 성경해석을 접하면, 그것을 성경으로 확인해야한다. 성경외에는 ‘주장’에 불과하다. 성경해석도 하나의 주장일 뿐이다. 성경을 통해서 각 성도는 날마다 예수님과 사귀면서 구원을 이루는 것이다. 여기에는 누구도 개입하지 못한다. 개입하는 순간, 성령이 그 관계를 깨뜨린다. 이것이 성경적 진리다. 성도와 성도는 오직 예수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인격적 관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