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5장은 3가지로 구성된다. ①예수님과 아버지의 관계 ②예수님과 제자의 관계 ③예수님께 속하는 방법(성도와 성도의 관계)이다. 15장 1절, 15장 5절, 15장 10절이 각각 핵심이다.
[요15:1]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요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안에 거하리라
①예수님과 아버지의 관계 : 하나님이 농부이고,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다. 옛 포도나무는 유대교를 말한다. 예수님은 새로운 포도나무, 진실한 포도나무가 되셨다. 가지는 제자들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너무 웃자란 가지는 ‘전지작업’이 들어간다. 뿔센 숫염소와 같고, 교만한 가지는 농부가 잘라 버린다. 농부가 보기에 그러한 것이다. 이때 농부는 포도나무를 보면서 가지치기를 한다. 가룟유다가 배신한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그 가지를 제거한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가지가 다시 나오게 하신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것은 예수님의 포도나무에서 가지로 태어난 것이다. 가지의 목적은 열매다. 포도나무의 열매다. 가지에서 참외가 열리면, 그 가지는 제거된다. 돌포도가 열려도 제거된다. 농부가 보기에 이상한 가지는 자른다. 하나님은 포도나무를 기준해서 그 가지가 열매를 맺을지, 맺지 않을지, 그것만 관찰한다.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있으면 농부는 그 가지를 보살피고, 깨끗케 한다.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죄사함을 받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②예수님과 제자의 관계 : 농부가 전지작업을 하는 것도 있지만,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 있어야만 그 가지에서 열매가 열린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안에 거하면”에서 알 수 있듯이, 말씀이 성도의 마음속에 거하면, 포도나무의 가지가 된 것이다. 말씀을 믿고,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께 붙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예수님께 붙지 않으면, 그 가지는 불에 던져서 태워진다. 예수님께 붙지 못하는 이단종교는 결국 불에 타서 사라진다. 참 포도나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외에 없다.
③예수님께 속하는 방법 : (성도와 성도의 관계) : 성도끼리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가지가 되는 유일한 방법이다. 가지와 가지가 서로 싸우면, 그 가지는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된다.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는 새로운 계명을 주셨다. 그것을 해야만, 포도나무의 가지가 될 수 있다. 예수님께 속한 자는 서로 사랑하게 된다. 서로 사랑하면 예수님께 붙게 된다. 예수님을 통해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성도와 성도의 관계는 서로 사랑의 관계이지, 나무와 가지의 관계는 아니다. 어떤 가지도 다른 가지를 속해서는 안된다. 가지와 가지는 서로 사랑하는 관계이다. 이단은 예수님을 벗어나서, 자기들끼리 서로 사랑하는 것에 불과하다. 성경해석이 아무리 탁월해도, 예수님과 떨어지면,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가끔, 이단을 벗어나서 예수님께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이단종교에서 보면, 그들의 가지에서 제거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단종교를 둘러보시고, 특별한 자들은 택해서 빼내신다. 출교(黜敎)가 곧 출애굽이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 문명권을 벗어나서 약속을 받았고, 이스라엘도 이집트를 탈출해서 가나안을 약속받았다. 결국,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약속의 근본이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는 1:1이다. 성도는 누구에게 속했는가? 오직 그리스도에게 속해야한다. 어떤 목사에게 속하면, 그 가지는 제거될 수 있다. 그리스도에게 속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고린도전서 3:22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바울과 아볼로와 게바와 세계와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 모두 너희 것이고,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다”고 했다. 믿는 성도는 오직 그리스도에게 속하고, 성도와 성도의 관계는 같은 가지로서 서로 사랑할 관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