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없는 광고주 공화국을 만들 셈인가, 숨은 언론 통제 없어야
[성명] 광고주들의 ‘사이비언론’ 프레임… 신종 언론 탄압 아니길
– 언론 없는 광고주 공화국을 만들 셈인가, 숨은 언론 통제 없어야
전국경제인연합 산하 한국광고주협회가 2015년 판 ‘나쁜 언론’ 리스트를 선정하는 등 특정 언론사를 상대로 한 여론 전쟁에 나섰다. 광고주협회는 지난 1일 <2015년 유사언론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여기서 광고주협회는 기업 경영층 사진의 인신 공격성 노출 등을 ‘유사언론행위’라고 비난하며, 특정 언론사를 ‘사이비언론’이라고 내몰고 있다. 지난 2011년에 이어 4년 만에 또다시 이른바 ‘나쁜 언론’을 선정하고 대대적인 언론플레이에 나선 광고주들의 행동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유사언론행위’나, ‘사이비언론’이라는 비난은 우리나라 언론자유를 심각하게 부정하는 표현이다. ‘유사(類似, 비슷함)’, ‘사이비(似而非,비슷하지만 가짜인)’라는 말은 모두 ‘가짜’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이같은 표현은 일제강점기 치하에서 일본제국주의가 한국 언론을 통제하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어떤 세력이라도 문화부와 시도 당국에 정기간행물 매체로 등록하고 정상적으로 언론 활동을 펼치고 있는 언론사에 대해서 ‘유사’, ‘사이비’란 용어를 동원해 공격을 가한다면 이는 곧 언론 자유를 심각하게 부정하는 행위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누구든 근거 없이 ‘사이비언론’이라는 선동적인 프레임을 동원해 ‘대언론전쟁’을 벌인다면 그것은 ‘신종언론탄압’일 수 있다. 이는 언론계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경계해야 마땅하다.
우리 언론은 이미 경제 산업 분야에서 감시견 역할을 사실상 포기한 지 오래다. 대한민국 기자들 가운데 대기업에 대한 비판기사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기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3조원대 모뉴엘 무역사기 사건에 보듯이 우리 언론은 모은행 계약직 직원보다 못한 판단력과 분별력을 보여줬다. 언론이 기업에 대한 감시견 역할을 포기하게 되면 결국 그에 따른 모든 피해는 국가와 국민이 부담하게 된다. 그렇기에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 사회에서 언론의 자유는 기업의 활동과 사주의 도덕성 등을 엄격하게 비판, 감시하는 파수꾼 역할을 응당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헌법이 보장한 언론자유의 근간을 뒤흔들고, 언론 활동 자체를 부정하는 신종 언론탄압이 작금에 진행 중이라면 언론계가 단호히 반대하고 나서야 한다.
광고주의 광고행위는 통상적으로 언론사 영향력을 통한 홍보에 그 목적이 있다. 광고주는 국민의 알권리로부터 위임받은 언론사 고유의 보도와 취재 행위에 대한 가치 판단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광고주가 직접 언론 통제에 나선다면 그것은 신문법 《제3조(신문 등의 자유와 책임) ① 신문 및 인터넷신문에 대한 언론의 자유와 독립은 보장된다.》조항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또한 신문법 《제6조(독자의 권리보호) ③ 신문·인터넷신문의 편집인 및 인터넷뉴스서비스의 기사배열책임자는 독자가 기사와 광고를 혼동하지 아니하도록 명확하게 구분하여 편집하여야 한다.》조항은 광고와 기사를 명확하게 구분하도록 함으로써 기사의 객관성, 공정성 등이 광고로부터 침해받지 않도록 함과 동시에 기사가 광고 영업 행위에 편파적으로 동원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에 비춰볼 때, 광고주가 언론의 자유로운 보도 행위에 대해서 개입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명백하다.
기실 언론 산업에 있어 광고주들의 입김은 막강하다. 현업기자들은 광고주의 호불호에 따라 출입처가 바뀌고, 퇴직까지 감수해야 한다. ‘나쁜 언론’ 선정과 함께,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 뉴스와의 기사 제휴 및 퇴출을 결정하는 포털제휴평가위원회에 광고주들이 직접 참여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들려오고 있다. 언론을 광고주들에 종속된 도구로 만들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즉시 재고되어야 할, 언론 자유에 반하는 행동이다.
이른바 ‘사이비언론’과의 전쟁 배경에 국내 상위 광고주인 모 대기업의 광고담당 임원이 관계돼 있다는 소문이 이미 공공연하게 언론계에 나돌고 있다. 이와 관련 포털제휴평가위 청와대 개입설 논란의 당사자인 민병호 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은 최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사이비 언론은 포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광고주협회 쪽의 입김이 작용했을 공산이 크다”며 광고주협회 입김설을 역으로 제기한 바 있다. 민병호 비서관의 주장에 대한 광고주들의 입장이 무엇인지 우리는 공개적으로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번에 ‘사이비언론’으로 낙인찍힌 언론사들은 대부분 영세하거나 중소 규모의 매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위 영업일지 파문으로 물의를 일으킨 대형종편방송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것만 보더라도 ‘나쁜 언론’ 선정 기준의 공정성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나쁜 언론’ 리스트에는 해당되지 않길 바라며, 광고주협회는 힘없고 약한 매체들에게만 집중된 ‘나쁜 언론’ 선정 기준에 대해서 그 근거를 명백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이른바 ‘유사언론행위’의 근본 원인에 있어 광고주들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광고주들은 비판 기사에 대해 광고를 무기로 압력을 행사하며, ‘광고와 기사 거래’를 통해서 직간접적으로 언론사를 통제해 왔다. 이러한 관행이 만연된 상황에서 거꾸로 기업의 비리를 꼬투리 잡아 광고를 요구하는 일부 언론의 소위 ‘사이비언론’ 행위가 생겨났다. 부패한 곳에 파리가 들끓는 것이다.
2015년 판 ‘사이비언론’ 리스트가 언론계가 스스로 정상화시켜야 할 일을, 여론의 힘을 빌려 눈엣가시인 비판 언론사를 퇴출시키고 언론에 족쇄를 채우겠다는 ‘여론선동’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란다. 불법행위를 저지른 진정 ‘나쁜 언론’이 있다면 보도자료를 뿌릴 게 아니라 민형사소송을 즉각 제기하고,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 만일 그 누구라도 언론 자유를 해치고, 언론 통제를 행할 불순한 의도를 숨기고 있다면, 결코 국민이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2014년 7월 3일
한국인터넷기자협회 (회장 김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