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8월 9일, 마가복음 9장을 상고한다. 마가복음 9장에서는 8장과 연결해서 헤르몬산의 변모사건이 나온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헤르몬산에 올라서, 엘리야와 모세를 보고, 구름속에서 하늘의 음성까지 듣는다. 예수님은 그 사건을 함구하도록 명령한다. 이유는 제자들속에서 그들만 특별대우한 것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후 상황을 보면 그렇다. 하늘의 음성을 듣게 되면,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했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하늘의 음성을 들은 그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게 된다. 자신을 따르게 하는 이상한 변종이 생긴다. 영적 계시는 “예수를 따르라”는 명령으로 주어진다. 이것을 잊으면 안된다.
예수님은 헤르몬산 수련회를 마치고 내려왔는데, 나머지 제자들이 간질병에 걸린 어린 아이를 치유하지 못하면서 전전긍긍하는 사건을 직면한다. “믿음이 없어서 그들을 고치지 못한 것”인데, 제자들도 믿음이 없고, 환자의 아버지도 믿음이 없으니, 대략난감이다. 나중에 환자의 아버지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자신의 밑바닥을 보이면서 예수님은 의지한다. 이것이 곧 믿음이다.
예수님은 갈릴리 지역으로 다시 돌아오면서, 마을 주민들을 만나는 것도 경계하면서, 제자들 교육에 집중하였다. ‘십자가 교육’은 예수님의 모든 사역이 완성되는 화룡점정인데, 제자들이 너무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세례요한이 죽었듯이, 예수님은 죽음을 통해 그 세대와 미래 세대의 희생양으로 거룩한 제사를 지내야했다. 그런데, 제자들은 또 다시 권력암투를 벌이면서, 제자 공동체가 분열의 위기에 처한다. 작은 공동체든, 큰 공동체든, 분열의 조짐이 보이면, 끝장이다. 누가 높냐, 누가 명분이 있냐, 서열을 다투면 공동체는 와해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극약처방을 내린다. “첫째가 되고자 하면 끝이 되어 섬기는 자가 되어야한다”고 말씀했다. 만약, 첫째로 군림하면, 그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작고, 낮은 자이며, 종과 같다. 예수님의 공동체는 섬기는 자가 주인이다. 종처럼 낮은 자가 주인인 공동체다. 이것이 인자의 권력이며, 십자가이다.
사도 요한이 누군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데, 따르지 않자 금했다고 예수님께 이야기하자, 오히려 요한을 야단친다. 요한의 금지가 세상권력을 휘두른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누구라도 시험에 들게 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잘못이다. 그 형제가 잘못을 한 것이 없는데, 그 형제의 마음을 다치게 하면 안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손이 범죄하면 차라리 손을 자르고, 눈이 범죄하면 눈을 빼버리고, 발이 범죄하면 발을 찍어버리도록 권면하신다. 손과 발과 눈과 입은 결국 습관이다. 인식에서 비롯된다. 지극히 작은 사람이라도, 예수의 공동체에서는 서로 사랑하면서 존중해야한다. 이것이 인자의 권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