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 (막10:25)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는 천국이 아니고, ‘예수의 천국운동’이다. 헤롯이 헤롯정권을 세우고, 빌라도가 로마 총독부를 세우고, 시카리당이 갈릴리에 은신처를 두고서 무장독립투쟁을 하듯, 예수님도 ‘예수의 복음운동’을 펼쳤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예수의 제자가 되어, 예수의 천국운동에 참예하는 것’을 뜻한다. 예수의 천국은 현실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정치가 현실적이듯,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도 현실적이다.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예수의 몸으로 번역되어 나타나면서, 천국은 현재가 되었다.
“낙타의 바늘귀”를 놓고, ‘낙타’를 ‘밧줄’로 해석하기도 한다. 히브리 원어로 낙타와 밧줄의 발음이 비슷해서 그렇게 풀이하는데, 발음이 비슷해서, 예수님이 밧줄을 ‘낙타’로 말했을 수도 있다. 성경의 원문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필요한데, 그렇다고 “이것은 맞고, 저것은 틀리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나는 “낙타”로 해석한다. 왜냐면, 마태복음에서 동방박사들이 ‘낙타’를 타고 왔다는 기록이 없지만, 우리는 낙타를 타고 온 동방박사로 해석하듯이, 부자청년이 ‘낙타’를 타고서 예수님께 왔을 수도 있다. 낙타를 타고 돌아가는 부자청년의 모습을 보고, 현장에서 예수님이 비유를 한 것일 수도 있다.
마가복음 10장에는 ▲모세의 이혼증서 ▲어린아이 축복기도 ▲부자청년 ▲베드로의 돌발질문 ▲야고보와 요한의 권력청탁 ▲여리고성 바디매오 거지가 나온다.
모세의 이혼증서와 관련해서,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기 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다”라고 말씀했다. 다른 여자와 결혼하려고 본처와 이혼하는 남자의 ‘혼인무효’에 대한 것이다. 즉, 예수님은 ‘간통죄’를 인정하고 계신다. 누가복음 16:18에는 해당 사건이 짧게 압축된다.
“무릇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림당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고 했다. 후반부에 ‘버림당한 여자’는 ‘그 여자’를 의미하며, 다른 여자와 결혼하려고 남자가 이혼증서를 써준 ‘이혼당한 여자’이다. 남편의 본처를 말한다. 이혼증서가 무효이니, 유부녀와 결혼하는 것과 같아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해석된다. 해당 성경구절을 원리원칙적으로 적용하면, 이혼녀는 재혼을 할 수 없다는 억지 해석이 나올 수 있다.
부자청년과 어린아이는 서로 대비된다. 어린아이들이 예수님께 가려고 하니, 제자들이 막았고,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을 향해 분노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어린아이들의 것이라고 말씀했다. 예수님의 천국운동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이 참여한다. 권력의 어린아이, 재물의 어린아이, 연륜의 어린아이들이 천국운동의 핵심멤버다.
가진 것이 없어야, 천국운동의 회원이 되기 쉽다. 예수님의 천국운동은 “십자가의 무소유”를 말하고 있어서 그렇다. 재물이 많은 부자청년은 그것을 버리기가 쉽지 않고, 권력이 많은 헤롯과 빌라도도 그것을 버리기가 어렵고, 종교권력이 많은 산헤드린 의원들과 대제사장들도 그들의 권력을 버리기 어렵다.
야고보와 요한이 친인척을 통해 예수님께 권력청탁을 했다. 그 사건이 제자 공동체를 흔들었다. 그때 예수님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한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다”고 말씀했다. 야고보와 요한의 권력청탁은 부자청년 사건과 연결된다. 제자 공동체가 결국, 부자청년처럼 권력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이제, 나는, 우리는 어떠한가? 진정 예수의 천국운동에 지금 참여하고 있는가? 우주적 종말의 심판때가 언제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의 종말은 날마다 줄어들고 있다. 죽는 날이 언제인지 몰라도, 죽는 그 날은 정해졌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그래서, 나도, 우리도 결국 죽는다. 죽으면, 모든 것을 남겨두고 떠날 것이다. 그때가 오기전에 우리에게 있는 것으로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천국운동에 함께 하자!! 참된 남편인 주님을 사랑하고, 세상에 대해 미련을 갖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