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장창훈 기자]=누구도 십자가의 은혜없이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는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 ‘십자가’를 너무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우리는 구원파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계해야한다. ‘십자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성도의 행실’을 배제한 십자가도 무의미하다. 십자가로 모든 것이 된다면, 성도의 행실은 개떡처럼 살아도 상관없는가. 이 부분에 대해 교회는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될 것이다. (신앙, 그 오해와 진실, 챕터 10 참조_천국행 티켓 예매 방법은?)
회개와 믿음과 구원은 모두 같은 맥락에서 파생한 단어다. 부모와 자식과 형제와 아들이 모두 ‘가족’의 개념에서 파생한 단어이듯, 회개와 믿음과 구원과 용서와 죄는 같은 맥락에서 출발한다. 회개(悔改)는 무엇인가? 세례요한과 예수님은 “회개하라”고 외쳤다. 여기서 “회개”는 한자어보다 뜻이 더욱 강력하다. 회개(悔改)는 참회하고, 고치다는 뜻이다. 성경속 회개는 이보다 100배는 강력하다. 개과천선(改過遷善)이다.
“구약에서 회개를 의미하는 슈브는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쳐 그릇된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신약에서 회개로 번역된 ‘메타노이아’는 문자적으로 ‘뜻을 바꾼다’는 의미다. 그러나 성경에서 메타노이아는 죄를 인정하고 생각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주로 사회적, 경제적, 도덕적으로 부정부패한 삶을 뒤바꾸어내는 것을 말한다.
– 신앙, 그 오해와 진실 p108에서 발췌
과거에 어떻게 살았든지, 십자가를 통해서 그 과거는 용서받는다. 탕자가 부모에게 돌아왔을 때, 부모는 탕자에게 무조건적 사랑을 베풀었다. 그런데, 그 탕자가 만약 집에서 개판으로 산다면, 이후 어떻게 될까? 성경에서는 탕자가 집에 돌아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나와있지 않다. 탕자가 허랑방탕한 그 삶을 버리지 못하고, 만약 술친구를 좋아하고, 아버지와 싸우고,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생활을 한다면, 탕자의 결국이 어찌될까? 탕자가 용서받은 것은 과거이고, 과거를 용서한 아버지의 사랑에는 “현재와 미래의 변화”가 전제된다.
1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자가 친구의 빚을 받아내려고 하자, 채무탕감이 취소됐다. 또한, 왕의 아들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손님중에 ‘예복’을 입지 못한 자는 다시 쫓겨났다. 이것은 무엇을 예고하는가? 십자가의 은혜가 ‘취소될 수 있는’ 천국행 티켓이라는 것이다. 믿는 성도는 이것을 명심해야한다. 우리의 노력으로 결코 얻을 수 없는 십자가의 은혜가 취소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어찌 해야할까? 이것이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마땅히 해야할 일이다.
베드로는 분명히 회개했다. 회개의 행실이 무엇인가? 사도행전을 통해 베드로의 회개나 드러난다. 어부였던 베드로가 설교자로서 복음의 증거자가 되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했고, 이방인 고넬료를 전도할 때 성령의 감동을 따라 사랑하지 못할 자를 사랑하였다. 십자가를 반대했던 베드로가 스스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갔다.
베드로는 개과천선했고, 괄목상대할 변화를 이뤘다. 그 변화의 원동력은 바로 오순절 성령강림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베풀어진 하나님의 은혜다. 그 은혜가 이 시대에도 동일하게 베풀어진다. 은혜를 받고, 감당하기 위해 믿는 성도는 날마다 자신의 삶을 정결케 해야할 것이다. 아멘!!
** 구원의 조건에는 성도의 도덕적 행위가 불필요하다. 그러나, 구원이 취소될 조건에는 성도의 도덕적 행위가 절대적이다. 성도의 행위로 구원을 이룰 수는 없지만, 성도의 타락한 행위로 구원이 취소될 수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한다. 구원이 예정되어 취소될 수 없다면, 성도의 행실이 회개의 열매를 열 이유가 무엇이며, 세상의 향락을 버릴 이유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