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은 날마다 마음밭에 씨를 뿌린다.
[서울교육방송 장창훈 기자]=하루를 살면, 하루는 살아진다. 하루가 모여서 1달이 되고, 1달이 모여서 1년이 되고, 1년이 모여서 10년이 되고, 10년이 모여서 인생이 된다. 인생은 금방 지나간다. 과거의 모든 인생들은 살았던 존재였으며, 그들의 현실은 영원할 것 같았으나, 한계점이 있었다. 그처럼, 나도, 우리도 그러하다.
마태복음 13장에는 천국을 비유한 다양한 말씀이 나온다. 그 중에서 씨뿌리는 비유를 유심히 살펴봐야한다. 4가지 밭의 종류가 나오는데, 씨는 길가밭에서 짓밟히고, 돌짝밭에서 죽고, 가시덤불에서도 숨막혀 죽고, 옥토밭에서 비로서 100배, 60배, 30배 결실을 맺는다. 씨를 상당히 많이 뿌렸는데, 옥토밭에서 결실을 맺으니, 다른 밭의 손실이 보상이 되는 것일까?
천국은 과연 무엇인가? 예수님은 천국의 씨앗이다. 예수님 자체가 그 시대앞에, 우리에게 천국의 씨앗이다. 천국의 왕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는 씨앗으로 임하신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대조법이다. 마태복음 24장에서도 헤롯성전은 거대하고, 그 옆에 계시는 예수님은 왜소하고, 초라하다. 헤롯성전앞에 예수님은 볼품없는 겨자씨다.
우리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그 사람을 위해 ‘충언’을 하면, 그 충언이 그 사람에게 먹히지 않을 때가 많다. 충고가 짓밟히면, 그 마음이 어떠한가?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을 때, 길가밭에서, 돌짝밭에서, 가시덤불에서 죽임을 당하신다. 말을 해도 말귀가 통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천국복음이 ‘죽임’을 당한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처럼 천국복음이 쓸모없는 허사가 된다. 그런데도, 주님은 그들에게도 천국복음을 뿌리신다.
사도 바울의 위대함은 어디에 있을까? 복음의 씨를 뿌리면서, 돌에 맞아서 죽을 뻔하고, 세상 지식인들에게 무렴을 당하면서도 십자가의 구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재판을 받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그 품위를 잃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사람으로서 가져야할 복음의 인격이다. 복음의 향기는 길가밭에서, 돌짝밭에서, 가시밭에서 죽임을 당한다. 그러한 순교로서 옥토밭에서 결실을 맺는다.
예수님은 고향에서 알아주지 않자, 고향을 떠났다. 알아주지 않으면, 발길을 돌리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가야할 길을 가는 것이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복음의 정신만 잃지 않으면 된다. 오직 복음이며, 복음의 심장으로 인생은 살아야한다. 복음을 놓치면, 아무리 성공해도 무용지물이다.
오늘, 주님을 만났는가?
오늘, 말씀을 읽었는가?
오늘, 성령을 불렀는가?
오늘, 찬양을 하였는가?
오늘, 하나님께 감사의 제단을 쌓았는가?
오늘, 기도하였는가?
오늘, 자신을 돌아보았는가?
오늘, 말씀의 거울앞에 자신을 비춰보았는가?
세상 것들이 크게 보여도, 겨자씨처럼 작은 ‘신앙의 훈련’을 무시하면, 영혼의 생명은 서서히 죽고 만다. 죽음에 이르는 병을 피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복음으로 운동해야한다. 복음을 벗어나면, 그 영혼은 선로를 벗어난 열차와 같아서 위험하다. 겨자씨처럼 복음이 뿌려질 때, 그 복음의 말씀이 자신의 마음에 들리는가? 들리지 않으면, 그 말씀이 어디론가 사라진다. 미세한 성령의 소리를 듣게 해달라고 기도해야한다. 이것이 인생이 살아가는 유일한 목적이다. 주님은 인생의 마음밭에 날마다, 매순간 말씀의 씨를 뿌리고, 말귀를 알아듣는 자마다 옥토밭이다.